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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추석 연휴의 소소한 일상






1. 자의반 타의반 평온하고 완벽한 추석 연휴를 보내고 있다. 열흘 동안 주어진 연휴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을 몰아두었다. 전화도 톡도 없는 시간. 몰입도 최상이다. 명절에 시댁 친정 식구없이 지낸 것도 결혼 후 처음이다. 가족 셋 모두 평온하고 소박한 명절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잔잔하고 게으른 즐거움이 흐른다. 일감 몰아둔 며느리 편하게 일하라고 어머님이 여행을 떠나신 덕분이다. 


2. 완변한 연휴 중에 빅 이벤트 내지는 헤프닝. 추석 당일 새벽. 갑자기 털보가 위층 화장실에서 물이 샌다고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시계를 보니 아직 5시도 안된 시간. 정말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이런 낭패라니. 아무리 물이 샌다고 해도 윗층에 올라가서 얘기할 수도 없는 상황. 게다가 수리하는 분들 부를 수도 없는 명절날 아침이다. 방법이 없었다. 그냥 떨어지는 물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혹시나 우리집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수도 계량기를 잠궜다.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추석날 오후. 혹시나싶어 위층에 올라가기 전에 다시 화장실 점검. 물이 보송보송 말라있었다. 증거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 우리집 수도 계량기도 다시 틀었다. 물도 제대로 나왔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어찌된 일인지.


추석 날 새벽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털보가 샤워기를 건드려 천정을 향해 물줄기를 뿜어댄 것. 그 물이 천정에서 뚝뚝 떨어진 것이었던 것이었다.


3. 평소에 염려쟁이인 나는 이런 대참사 앞에 평안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어쩔 수 없으니 잠이나 자고 해결하자며 다시 식구들을 자게 했다. 무엇이 나를 염려쟁이에서 벗어나게 한 것일까. 추석 연휴 열흘을 단지 화장실 문제로 놓치고 싶지 않은 열망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나 대신 털보가 염려 가득이었지만. 아마도 나 대신 염려해준 털보 덕에 다시 잠자리에 들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4. 추석전 날 거실 불 다 끄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에서 혼자를 봤다. 이런 날 혼자 영화라니 감격. 게다가 이 영화에서 김민희의 재발견. 평소 그녀의 연기에 그닥 마음을 주지 못했는데. 역시 사랑의 힘은 세다. 세상의 평이야 어떠하든 홍상수 감독이 건재하길 바란다. 


5. 아직 나에겐 연휴 5일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