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 보는 세상

다시 몰운대에서 -- 황동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기 벼락 맞고 부러져 죽은 척하는 소나무
저기 동네 앞에서 머뭇대는 길
가다 말고 서성이는 바람
저 풀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몸 매무시하는 구름
늦가을 햇빛 걷어들이다 밑에 깔리기 시작하는 어스름
가끔식 출몰하는 이름 모를 목청 맑은 새
모두 노래 채 끝나지 않았다는 기척들.

나도 몰래 마음이 뿌리내린 곳,
뿌리 몇 차례 녹다 만 곳.

내가 나를 본다
더 흔들릴 것도 없이 흔들리는 마른풀.
끝이랄 것 없는 끝
노래 대 하나 뵈지 않게 출렁여놓고.


------ 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