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황동규

다시 몰운대에서 -- 황동규 저기 벼락 맞고 부러져 죽은 척하는 소나무 저기 동네 앞에서 머뭇대는 길 가다 말고 서성이는 바람 저 풀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몸 매무시하는 구름 늦가을 햇빛 걷어들이다 밑에 깔리기 시작하는 어스름 가끔식 출몰하는 이름 모를 목청 맑은 새 모두 노래 채 끝나지 않았다는 기척들. 나도 몰래 마음이 뿌리내린 곳, 뿌리 몇 차례 녹다 만 곳. 내가 나를 본다 더 흔들릴 것도 없이 흔들리는 마른풀. 끝이랄 것 없는 끝 노래 대 하나 뵈지 않게 출렁여놓고. ------ 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 중에서 더보기
몰운대행 후닥닥 출발하게 된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 여행. 가자, 갈까요?, 가요.. 라고 결정되고 곧바로 출발할 수 있었던 여행이라 후닥닥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강원도 정선 처자가 아니었다면, 더구나 성격 급한 두 사람이 아니라면 감행해 볼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 성격 급한 사람 중 한 사람은 강원도 처자인 명화공주님이고 또 한 사람은 울 털보다. 나는 그 중간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깍두기로서 가만히 묻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 더구나 운전도 하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가볍고 홀가분한지... 그리하여 감행된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행이다. 오가는 동안 내내 운전하고 있는 명화공주님. 명화공주님 고향이 강원도 정선 화엄마을, 즉 그림바위이다.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 뒷자석에 앉아서 펼쳐지는 바깥 풍경을 여.. 더보기
쓸쓸하고 더딘 저녁 쓸쓸하고 더딘 저녁 - 황동규 이제 컴퓨터 쓰레기통 비우듯 추억통 비울 때가 되었지만, 추억 어느 길목에서고 나보다 더 아끼는 사람 만나면 퍼뜩 정신 들곤 하던 슈베르트나 고흐 그들의 젊은 이마를 죽음의 탈 쓴 사자가 와서 어루만질 때 (저 뻐개진 입 가득 붉은 웃음) 그들은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밀밭이 타오르고 밀밭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마차가 타오르고 사람들의 성대가 타오를 때 그들은 왜 몸을 헤픈 웃음에 허술히 내주거나 몸을 피스톨 과녁으로 썼을까? 왜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재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했는가? 시장 인심이 사납던가. 악보나 캔버스가 너무 비좁던가? 아니면 쓸쓸하고 더딘 지척 빗소리가 먼 땅 끝 비처럼 들리는 저녁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던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