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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쓸쓸하고 더딘 저녁 쓸쓸하고 더딘 저녁 - 황동규 이제 컴퓨터 쓰레기통 비우듯 추억통 비울 때가 되었지만, 추억 어느 길목에서고 나보다 더 아끼는 사람 만나면 퍼뜩 정신 들곤 하던 슈베르트나 고흐 그들의 젊은 이마를 죽음의 탈 쓴 사자가 와서 어루만질 때 (저 뻐개진 입 가득 붉은 웃음) 그들은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밀밭이 타오르고 밀밭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마차가 타오르고 사람들의 성대가 타오를 때 그들은 왜 몸을 헤픈 웃음에 허술히 내주거나 몸을 피스톨 과녁으로 썼을까? 왜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재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했는가? 시장 인심이 사납던가. 악보나 캔버스가 너무 비좁던가? 아니면 쓸쓸하고 더딘 지척 빗소리가 먼 땅 끝 비처럼 들리는 저녁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던가? 더보기
우리는 지워지고 고흐만 남다 나는 친구 선애와 영옥이랑 고흐전을 보러갔다. 고흐의 그림을 만나고 나니, 우리는 지워지고 반 고흐만 남았다. 반 고흐전을 보러가자고 선애에게서 손전화가 왔다. 순간 잠깐 망설였다. 털보랑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시내에서 볼 일이 있었던 내가 따로이 약속을 정할 필요없이 그러자고 했다. 일을 일찍 마친 나는 선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만난 영옥이랑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기도 소문난 반 고흐전은 마침 헐렁했다. 오전에 날씨가 눈과 비로 오락가락하며 하두 요상하더니 고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적었던 탓이다. 속으로 두어번은 넉넉히 보고도 남겠다는 나만의 계산을 깔고 미술관을 올려다 보았다. 잠시나마 고흐가 내 차지가 된 기분이었다. 역시 넉넉히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림 앞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