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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보는 세상/낯선 또는 낯설지 않은 동네

성.내.동.1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음식, 친구와 싸운 일(사이좋게 놀았던 순간도 많은데 왜 싸웠던 것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전거타기, 학교 운동장의 뜀틀, 마당에서 이 닦을 때 송충이가 내 허벅지에 떨어졌던 일. 그 중에 내 몸이 기억하는 것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엄마를 기다리던 골목에서 쭈그리고 앉았던 어린 나다. 


어릴 적 살던 동네는 골목도 좁았고 약간 가파른 언덕도 있었다. 언덕 바로 위가 우리집이었고 우리집을 통과해서 더 높이 올라가면 집들이 아래 동네보다 더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집은 윗 동네로 통하는 골목 쯤에 위치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우리집 바로 아래 넓은 공터에서 주로 놀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했지만 노는 걸 바라보는 걸 더 좋아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 자세대로 엄마를 기다렸었던 것을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골목 끝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하루를 마친 해가 정릉쪽 북한산을 넘어가면서 산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곧 골목 끝에서 나타날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 아마도 식구많은 집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지금의 감성을 지닐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시간을 홀로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낯선 공간. 낯선 동네. 이곳을 바라보는 나의 첫번째 선택은 바로 그 시간이다. 길어진 그림자 끝에 엄마의 그림자가 포개지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에, 낯선 동네를 바라보기로 한다. 그곳에 어린 '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이 던지는 종국적인 질문은 '나'라는 존재로 향하게 되어 있다. '나'가 곧 세계이며 그 세계의 시작과 끝인 탓이다. '나'가 부재하는 세계란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다.

한 시인이 세계를 투명하게 인식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나'의 존재를 올바르게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세계란 '나'의 형식이며 본질이며 허상이며 실상이어서 '나'를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인 탓이다.


---<나는 '이미지의 의식'이다>에서. 오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