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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화가 이상열의 나무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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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화가 이상열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는 꽃의 화가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때 화폭 속에서 나의 시선을 잡아끈 꽃 중에 <개나리>가 있었다. 이상열의 개나리는 봄에 일찍 피어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작고 여린 노란 꽃이 아니었다. 그의 개나리는 샘처럼 펑펑 솟아나고 있었다. 나는 개나리가 샘처럼 솟아나는 힘찬 꽃이란 건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긴 그렇게 힘차게 솟지 않고는 아직도 어른 거리고 있는 겨울 추위의 끝자락을 깨끗이 걷어내고 그렇게 일찍 봄을 맞을 순 없었으리라.
지난 해 다시 그의 그림 앞에 섰을 때 그 개나리는 이제 파도가 되어 있었다. 개나리는 노란 바다를 이루어 세상으로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그때부터 개나리를 보면 나는 파도 소리의 환청을 듣곤 했다. 그때면 난 그 파도에 몸을 싣고 세상으로 쏴아 몰려나가고 싶었다. 꽃의 힘은 내게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좀 무력해진다 싶을 땐 그의 개나리를 생각했다.
올해 만난 화가 이상열의 그림은 그가 이제 나무의 화가가 되었음을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화폭 속엔 감나무와 배나무가 있었으며, 복숭아 나무와 사과나무가 있었다. 그는 왜 꽃에게 내주었던 자신의 화폭을 이제 나무에게 내주고 있는 것일까.
나무는 꽃의 몸이다. 꽃이나 과일, 혹은 잎은 나무의 표정이고 낯빛이다. 꽃의 화가였을 때 이상열이 나무의 표정과 낯빛을 살피고, 대개 연약하게 다가오는 그 표정을 힘의 표정으로 살려내고 그려냈다면, 나무의 화가가 되었을 때 그는 나무의 몸을 살핀다. 이상열의 초점이 꽃에서 나무로 내려갔다는 것은 그러고 보면 표정과 낯빛을 살피던 시선이, 그 표정과 낯빛을 낳은 몸으로 내려갔다는 의미이다. 몸은 우리의 현실이다. 힘의 표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현실을 함께 살피지 않으면 표정은 얼굴에 그린 덧칠이 되고 만다. 표정을 살피는 한편으로 몸에 시선을 주어야 하는 연유가 그곳에 있다. 몸으로 가면서 꽃을 살피던 시선은 한층 깊어지고 현실의 지층에 단단히 발을 내린다.
말을 나누고 대화를 하려면 표정에 눈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누구나 처음엔 꽃에 눈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말이 오고가다 마음의 나눔이 깊어지면 우리는 서로 껴안게 되고, 그 포옹의 자리엔 바로 몸이 있다. 그래서 꽃의 그림이 눈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그림이라면 나무의 그림은 세상에 대한 포옹의 그림이다.
두 해 전 이상열의 그림 속으로 초대받았을 때 그 길이 꽃들과 얘기나누며 노는 길이었다면 올해 나무들이 가득한 그의 화폭은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가끔 포옹을 나누는 길이었다. 그는 그렇게 꽃의 화가에서 나무의 화가로 길을 터놓고 있었다.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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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집이 보이는 배밭(Oil on Canvas, 10P, 2007)


시인 오규원은 그의 시 <그림과 나 2>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하나 담아 우리에게 내민다.
그 그림 속에 그는 “허공에 크고 붉은 해를 하나” 그리고
“산 귀퉁이에는 집을 하나 반쯤 숨겨 그”린다.
그는 “그 집에 들어가 창을 드르륵” 연다.
그러자 “지나가던 새 한 마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다” 간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화가 이상열의 그림 앞에 선다.
<붉은 집이 보이는 배밭> 그림이다.
그림 앞에 서 있던 나는 어느 덧 그림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림의 한 귀퉁이로 반쯤 몸을 숨긴 붉은 집으로 스윽 들어가고 있었다.
집은 넓은 창을 앞으로 두고 그 창에 하얀 배밭을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그의 그림 앞에 섰더니
배밭 너머 그림 속의 집으로 걸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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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보이는 복숭아밭(Oil on Canvas, 100P, 2007)


강은 참 이상하다.
강을 곁에 두면 우리의 시선을 그곳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강이 보이면 그 강가의 복숭아밭에서도 복숭아 나무들이
모두 시선을 강으로 둔다.
난 복숭아 나무와 나란히 서서 강을 바라본다.
강가에선 왜 복숭아 나무도 강으로 시선을 두는 것일까.
그건 강이 복숭아 나무의 시선을 싣고 아래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강가의 복숭아 나무는 알고 있다.
강으로 시선을 두면 강이 그 시선을 싣고 아래로 흘러간다는 것을.
우리는 강가에선 가만히 앉아서 흘러갈 수 있으며,
강가의 복숭아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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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 감나무(Oil on Canvas, 10P, 2007)


어느 해 겨울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
한 가게의 유리창 안에서
빨갛게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감을 보았다.
그러나 내 눈엔 그곳에서
빨간 감에 담겨 걸음을 멈추고 있는 가을이 보였다.
나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 가을에 시선을 뺐겼다.
이상열의 화폭 속에서 감나무를 마주했을 때,
마찬가지로 내가 본 것은 감나무가 아니라
그 감나무 앞에서 멈춰선 어느 해의 가을이었다.
나는 내가 마치 그해의 가을이라도 되는 양,
그의 감나무 앞에 멈춰서 한참 동안 시선을 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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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집 설경(Oil on Canvas, 10F, 2007)


이상열의 <은행나무집>에선 집밖의 은행나무가
집을 노란 가을로 물들인다.
이상열의 <감나무집>에선 집안의 감나무가 가지를 뻗어
집밖으로 붉은 가을을 내걸어 놓는다.
나무는 그렇게 가을로 집을 물들이기도 하고,
또 가을을 집밖에 걸어두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이상열의 배나무집엔 눈이 온다.
눈이 온 날,
그 흰색에 뒤섞여 집과 배나무는 하나가 된다.
겨울 추위는 그렇게 하얀 포옹으로 넘겨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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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한국구상대제전 |  2008. 4. 11(금) ~ 4. 17(목)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Booth B33  |  오전 11시 - 오후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