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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이야기

P군, 나를 감동시키다



오늘은 P군을 만나러 가는 날. 오늘도 P군은 오지 않겠지. 오지 않을텐데 가지 말까.. 나는 잠시 머리에 손을 얹으며 느리게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P군이 잘 안온다고 내가 안가면 웬지 찝찝하잖아. 못만나도 갔다 오는게 마음이 편해.그래 준비하느라 귀찮기는 하지만 몸은 불편해도 마음이 편한 쪽으로 하는게 옳겠지. 그래 빨리 갔다와서 일하자... 느릿하게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바쁘게 나갈 채비를 마친다.

오늘은 P군을 만나는 날. 오늘도 P군이 오지 않으면 책이나 읽고 오자.. P군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는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그러나 P군은 언제나처럼 묵묵부답.오늘도 P군은 오지 않는구나. 에이, 책이나 읽자..
잠시후. 문열리는 소리. 이상하다. 이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누가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P군이 눈 앞에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 : 왠 일이니? 난 네가 안오는 줄 알았는데..
P군 : 지나다가 오늘이 목요일인게 생각이 났어요. 불이 켜 있길래 혹시나 하고 들어왔어요.
나 : 정말? 너무 반갑다. 고마워. 아줌마는 기다리다 그냥 허탕치고 가는 줄 알았어.


P군, 머리를 만지며 쑥쓰럽게 자리에 앉는다. 짜슥 1년이 가까워오니까 이제야 목요일마다 만나는게 생각이 나드냐? 뭐, 그나마 기억해준게 고맙지 뭐. 오늘도 허탕치고 되돌아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줌마를 감동시키다니, 기특한 것.
아줌마 너한테 오늘 감동 심하게 먹었다.^^

나는 1년 동안 P군과 만나 특별한 건 별로 없고 그냥 아이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가끔 P군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뭘 가장 잘할 수 있는지, 희망이 무엇인지,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걸 일깨워주는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란 아이랑 시시껄렁한 얘기로 웃고 오거나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샘들 흉을 같이 봐주면서 낄낄거리고 온다. 나랑 같이 흉봤으니 교실로 돌아갈 때는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그럼 알 수 없이 들끓었던 마음이 조금은 얌전해질 수 있겠지...^^

만난 날보다 만나지 못한 날이 더 많은 P군. 이제 너랑 만날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목요일날은 잊지 말고 만나자꾸나. 너를 위해 기다려주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