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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겨울 저녁빛만큼 짧은 2월




마감할 때의 촉박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간이 늘어지게 간다. 마감과 마감 후라는 시간을 맞는 나로서는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분명 많은 일을 하면서 지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일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일이 휘몰아치면 일 속에 파묻혀 시간을 뭉텅뭉텅 잘라 먹게 되는가보다.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일도 많았지만 여러가지로 복잡한 일들이 많을 때였다. 복잡한 일들을 잊기에는 많은 일들이 오히려 행복하기까지 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바쁘다는 건 좋은 핑계 중에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때 생각나는 건 친구나 식구들이 전화오면 젤 먼저 묻는게 '바쁘냐?' 였다. 그럼 '응, 바뻐' 이렇게 한마디 하면 금방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을 몇년 보내니 친구들도 점점 전화가 뜸해졌다. 그때부터는 주로 내가 다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고, 아무리 바뻐도 응, 바뻐라고 하지 않고 전화건 용건을 들어줄 정도의 여유가 생겼고,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지 내가 먼저 전화를 걸면 상대방에게 전화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꼭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ㅋ

지난 일주일을 일 속에 파묻혀있다가 나오니 일주일 동안 뭐,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책도 끝냈고, 집안 결혼식도 다녀왔고, 틈틈이 책을 읽으며 보냈다. 책은 올해 시작한 에니어그램 공부 관련 책들이다. 이 공부를 시작하니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틈틈이 가지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가, 요즘 특히나 말이 줄어든 것 같고, 가슴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머리로 생각하기로 나를 돌아보니, 심하게 상처받을 일들이 지멋대로 가지치기가 심했었는데, 그 현상이 줄어들었다. 

위 사진은 선자령에서 찍은 것이다. 겨울 저녁빛이 조금 남았을 때 겨우내 마른 가지 위로 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가지 너머로 같이 갔던 일행들이 모여서 각자의 위치에서 사진을 찍거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2월은 겨울 저녁빛처럼 짧은 시간과 같다. 마지막 겨울 저녁빛 넘어가듯 2월의 일들이 머리 속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일들을 끝내면 마치 보너스처럼 3월이 기다리고 있다. 사흘이나 더 많기 때문이다. 마치 길어진 봄볕같다고나 할까... ^^

짧은 2월을 시작하는 날, 벌써 나는 한달 일정의 순서를 숨가쁘게 고르면서, 3월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