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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수능때가 되면 생각나는 친구...

어제가 수능이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고3 수험생들과 재수생들이 시험을 치뤘겠지. 나는 항상 이맘 때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나랑 같이 공부했던 친군데 학력고사를 하룬가 이틀 앞두고 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서 나만 시험을 치루고 그 친구는 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후 우리는 행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로 갔고, 그 친구는 직장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직장을 다니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라 생활이 별로 달라진건 아니었다. 그냥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가 점점 더 늦어지고, 그러다 대학과 자신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직장을 열심히 다녔고, 연애도 신나게 했으며, 또 결혼도 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내 친구는 다시 방통대에 입학해서 방통대를 아주 길게 다니면서 졸업을 마쳤다. 나는 그 친구의 졸업식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해는 눈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올림픽경기장의 천장이 눈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은 해였다. 그때 친구도 졸업식에 못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물론 나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마친 친구는 몇년의 직장생활을 더 하다가 대학원에 입학했다. 정말 열심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올해 초 좀 쌀쌀한 봄 날이었던가, 하여간 좀 쌀쌀한 날이었다. 나는 시내에 볼 일 있어 나갔다가 그 친구에게 들렀다. 물론 그때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어떤 얘기든 하고 싶어할 때였는데 나는 얼굴만 보고 그냥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친구가 누런 봉투를 하나 건내주면서 졸업논문이라고 했다. 상당히 두꺼운 논문집이었다. 책을 받으면 나는 겉장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 손으로 논문을 훑으며 고생했을 친구를 떠올리며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났을까. 나는 논문을 훑어만 봤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는데 청소하다가 책상 위에 누런 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나는 청소하다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논문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논문 첫장에 감사의 글이 실려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어머니의 며느리와 딸로서 바쁘게 살면서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가득 실어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두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아마도 감사의 글이었거나 아님 친구에게 사랑을 담은 문자를 보냈던 기억이다. 그 친구가 기억할라나 몰라...ㅎㅎ
하여간 이맘때가 되면 늘 그 친구가 내 맘의 한쪽을 시리게 하더니... 이제는 그 맘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그 친구가 또 뭘 할지 그게 궁금해진다...ㅎㅎ 그리고 뭘 하든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