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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남자아이, 여자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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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여자아이(레너드 삭스, 이소영옮김, 아침이슬 펴냄)>는 지난 30년 동안 아동발달상의 성차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겪게된 혼란을 임상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잘 풀어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 세대가 유아기나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몇가지만 간추리면...
레너드는 여자의 뇌, 남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성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남자아이들이 주의력결핍장애가 의심된다는 쪽지를 들고 줄줄이 진찰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년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주의력결핍장애를 완화시키는 약이 아니라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들보다 청력이 약하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학습 방식에는 확고한 성차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부.모.와 교.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 경험 하나. 우리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남자 담임이었는데 고학년만 다루다 저학년 담임을 맡게 된 이 남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떻게 다뤘냐 하면.. 남자 아이들이 교실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면 발길로 휙~ 걷어찼다는 것. 내 딸 표현에 의하면 한번 발길로 차면 앞에 있는 아이가 뒤로 휙 내동댕이쳐졌다고 한다. 그때 여자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ㅎㅎ  하지만 나는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때 남자아이들의 엄마들 아무 말도 못했다. 수업시간에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한 두번 발로 찬 것이라고 하는데... 제 아이가 뛰어다녀서 그렇다니... 찍소리도 못했다. 그 선생으로부터 자신의 아이가 발길질당할까봐서 살얼음판이었던 것이 새삼 기억에 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학교생활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교육의 성별 간극에서 약자의 입장에 있는 것은 여학생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학생들이라는 것. 평균적으로 남학생들은 읽기나 글쓰기에서 여학생들보다 1년반 정도 뒤처지며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학업에 전념하지 않으며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더 낮다는 것. 하여 남학생 여학생 모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성문제, 중독(약물, 마약)에 관련된 글들도 실려있는데 현재 미국의 상황이니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10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먼 일은 아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 특히 유치원 아동들이 있는 부모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또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것. 이건 나의 종교문제와도 연관된 고민이었는데 이 책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나는 나의 종교와 관련된 분들이 이 부분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많이 봤다. 더구나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물론 성경에도 나와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여기에 내 고민이 있었다. 이들의 문제를 나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확실한 대답을 얻질 못했는데 이 책에서는 간단하게 의학적으로 풀고 있다. 이 글이 해답은 아니지만 나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즉 동성애와 이성애의 생물학적인 차이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차이와 거의 같다는 것. 왼손잡이는 하나의 단계가 아니듯 왼손잡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바뀌지 않듯이 성적 취향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어떤 아이들이 왼손잡이로 태어나는 것처럼 어떤 소년들은 게이가 될 숙명을 타고 난다고 한다. 물론 이 설명은 의학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왼손잡이도 처음에는 엄청난 수난을 겪었으나 현재는 소수의 왼손잡이들에게 편리한 제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소수의 과부들, 소수의 고아들, 소수의 문등병자들이 예전에 얼마나 싸늘한 시선과 버림을 받았던가... 소수의 우리 사랑부 친구들도 지금은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 사회의 편견 아래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 나는 레너드의 설명에 의해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 편견과 무지로부터 나오는 경멸에 찬 시선이나 동정어린 시선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상황이어서 아직은 우리나라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 그리고 더 이전에 우리 엄마 그리고 또 그 엄마의 엄마 시절, 여자여서 받은 설움을 이제 남자들이 받는 시대라 하니 그 시절 하~ 수상하고 묘^^하기는 하나 그걸 단순히 고소해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여서 받은 설움이 있었다면 그걸 극복함과 동시에 남자들이 받게 되는 설움과 차별은 같이 고민하고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딸과 세상의 딸들이 잘 사는 길이며, 세상의 남자들이 잘 살아야 궁극적으로 내 딸, 즉 여자가 행복해지는 길이며, 동시에 남자 여자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