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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상처입은 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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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이유. 그러니까 내가 선택해서 산 책이 아니라는 걸 밝힌다. 헨리 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는 지난해 공부한 곳에서 개근했다며 상으로 준 책이다.

이 책 표지에 '이 시대의 사역자는 상처입은 치유자입니다. 우리 자신이 입은 상처로 인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이 부분의 '사역'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쪽에 밀쳐두었었다.

왜 '사역'이라는 단어에 그리 민감했을까... 일단 사역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남에게 어떤 동작을 하게 하는 뜻을 나타내는 어법> <남을 써서 일을 시킴>라고 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는 그리 민감하게 밀쳐둘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나의 위치는 봉사자라는 것, 그러니 사역자의 몫은 내 몫이 아니라는 민감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작년에 내가 공부한 곳에서 자꾸만 우리에게 사역자라고 했다. 그냥 봉사자라고 해주면 좋을것을. 이건 내 마음가짐이 봉사자, 도와주는 사람, 그냥 도와주기에는 전문적인 소양이나 지식이 모자란 사람이므로 전문기관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사역이라는 어마어마한 짐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내 몫의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있었던 것. 그래서 슬그머니 밀어두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건 순전히 파마머리 도사님 때문이다.^^ 그분의 글터가 The Wounded Healer 로 상처입은 치유자라니... 이 책을 더이상 밀쳐두고 시간끌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는 것...^^

이 책은 130페이지 가량의 얇은 책이다. 그러니 무게 또한 상당히 가볍다. 그런데 내용은? 실제 무게만큼 가볍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리할 능력이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헨리 나우웬이 각 장마다 예를 들고 있는 사람들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상처입는 치유자를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를 만나고 싶다. 나는 사.역.자.가 아니라 진정한 사역자를 만.나.야.할.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이 책을 미리 읽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 하나. 그건 나의 써니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써니와 만날 때 조금 우왕좌왕했던 것 같다. 상담도 처음이고, 나의 딸과 상당히 다른 아이를 만나니 당황도 되고...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써니와의 만남을 좀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써니와의 만남에 세번째 場인 <소망없는 사람을 위한 사역>에서 보여준 치유자로서의 자세를 흉내만이라도 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또한 감사한 건 지금부터라도 써니에게 향한 나의 자세가 어때야 할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한 아쉬움을 적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38쇄나 된 책이다. 초판나오고 중간중간 번역을 손질했겠지만 정말 이 대목의 원본이 이랬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곳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번역서들은 나같이 실력없는 사람들도 맘놓고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원본과는 다르지 않겠지만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서 서걱거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번역은 정말 한국어를 잘한는 사람이 해야 한다. 영어만 잘 알고 한국어 문장 실력이 없는 그런 책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헨리 나우웬의 다른 책들도 이제 읽어보고 싶다. 부디 서걱거리는 문장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책을 만나고 싶다. 기독서적들은 발행만 하면 일정 수량 정도는 소화가 된다는 점에서 너무 안이하게 출판되는 분위기는 좀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정리할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듯하다^^. 나는 나의 소감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정도여서 이 책의 좋은 안내자가 되지 못하여 파마머리 도사님이 정리한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의 이름으로>에 관련된 글로 연결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