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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문학을 꿈꾸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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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이 책을 오규원 선생님께 바칩니다' 라는 글귀가 있다. 나에겐 시인 오규원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오규원 선생님, 즉 스승이다.

워낙 몸이 약한 분이라 한 해 한 해 오규원시인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올해초 신문에서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겐 시인이었던 그의 부고가 울며 통곡할 정도의 슬픔은 아니지만 이제 어딘가에도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가슴 한구석을 한동한 아리게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며 글로 만난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되면 글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많은 모습들에서 실제로 실망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필자들을 만날 때는 미리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생각해보고 만나야 실망하는 일이 적다. 이건 순전히 내 경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 글을 쓴 선생들의 제자들은 모두 똑같지는 않지만 오규원 선생님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셨지만 두꺼운 안경넘어로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발견했다는 글들이 많다. 그래... 참 따뜻한 분이셨을 것 같다. 나에겐 시인이셨던 오규원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던 많은 작가들이 참으로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장편 '외딴방'을 문예지에 연재하던 때에 선생께서 전화를 하셨다. 무슨 말씀 끝에 선생은 니 글쓰기는 니 살을 파먹는 글쓰기이니 작품을 많이 쓰지 말라, 하셨다. 그러면 니가 아프다. 그때도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의 글쓰기가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인가, 하고. 선생을 통해 접했던 시와 시인들의 삶은 내게 이 세상 것이 아닌 세계를 엿보게 하는 시선을 갖게 해주셨다. 그것은 비루한 산문이 대신할 수 없는 경이의 세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언어로 추적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축약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겹과 그늘을 이끌어올 수 있다는 것, 내가 간혹 무의식의 세계에 이끌려 들어가 앞 문장에 이끌려 나오는 공포스러운 뒷문장 때문에 형틀 같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게 되는 순간을 체험하게 되는 것도 선생을 통과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자네는 성적이 안돼  줄 수 없는 건데 내가 편법으로 주는거야. 출판사 지원 장학금이라고 알지. 술 사먹지 말고 맨날 애들하고 교문 앞에서 컵짜파게티 사먹지 말고.... 밥 사먹어." --- 함민복

"이 시가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감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부터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직접 지워보게."  난 부끄러움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의 그 나직한 목소리는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차고, 차면서도 따뜻한, 무서우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무서운 그런 느낌이었다. .......[중략]... 선생께서 정리한 시를 읽어보라고 하셨다. 난 고친 시를 읽었다. 선생이 말씀하셨다. "됐다."... 그날 저녁 불 꺼진 명동거리를 걸어 내려올 때, 내 손에 들려 있었던 그 가볍고 촉촉했던 것, 그것은 나도 모르게 캐 가지고 나온 그 나무가 아니었을까.--- 이 원

갑자기 나도 선생님이라고 불러보고 싶다. 선생님이 안계신 이곳이 많이 허전하다... 이 책은 오규원 선생 회갑기념문집으로 이 책의 필자들 모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출신들이다.

---- 문학을 꿈꾸는 시절, 신경숙 외, 세계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