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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십자가-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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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왜 그대의 건물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십자가상이 있는가?'
교회 강단 위에 가시 면류관 쓰고 고개 떨군 상(像)을 보며
불타가 물었다.
'열반상이 안에 들어와 있는 내 거처는 참 드문데.'
'무교회주의자에게 물어보게나.'
'원효에게나 물으란 말인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예수가 말했다.
'열반보다 고통이 인간에게 더 바투 있지 않은가?'
불타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고통이 곧 삶의 전제인가?'
무언가 기억해내려는 듯 한참 이마를 찌푸리다 예수가 말했다.
'십자가 위에서도 고통은 끝내 자기 속내를 다 보여주질 않데.'
'십자가 위에서 고통이 활활 탈 때
그냥 살아 내려 오셨다면?'
잠시 후 예수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런 막장 없는 공(空)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