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시험이 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타코를 위해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으로 떠나면 한동안 얼굴보기 힘들다며 고모들이 마련해준 여행이었다. 모처럼 식구들 다 모이는 줄 알았는데 어머님과 타코의 큰고모부만 빠지고 떠났다. 3월 중순에 떠나니 봄인 줄 알았는데 강원도는 역시 강원도인지 엄청 추웠다. 봄이라는 심리가 작용해서 그런지 더 춥게 느껴졌다. 때마침 여행가기 전날부터 날이 흐리고 비도 오면서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모들을 위해 미사리에서 회 두 접시랑 산낙지를 평창까지 공수해간 저녁은 오랜만에 푸짐했다. 하긴 고모들을 위해 준비한 회라고는 하지만 먹다보니 털보랑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 같긴 하지만. 오랜만에 세 가족이 모이니 이런저런 얘기로 밤이 길어졌다. 덕분에 늦잠까지 자고는 늦은 아침을 먹고 평창 허브나라로 향했다.
털보랑 여행다니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창으로 들어오는 푸른 빛의 아침을 맞는 것으로 여행의 시작을 맞기 마련인데 어린 아이들이 있으니 아무래도 아침이 늦어졌다. 덕분에 여행지에서 맛보는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평소에는 여행지에서의 늦잠은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맛본 여행지의 늦잠은 느긋함과 평안을 안겨주었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그랬는지 더욱 달콤한 늦잠이었다.
평창 허브나라. 겨울에 온 허브나라는 온통 잠들어 있었다. 깨어있는 곳은 온실 뿐. 야외에 심어진 허브는 아직도 겨울나라였다.
바람불고 추워서 온실에 들어가니 반갑다. 타코 옆이 문지 큰고모. 큰고모는 타코를 자기 딸이라고 부르며 이뻐한다. 고모 옆에 서있는 남자 두 사람은 안경에 김이 서려 뿌엿다. 안경낀 사람들은 온실에 들어가니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뿌연 세상이 좋은지 온실 밖과 안을 연실 드나들면서 김서림을 즐기고 있는 우리 승현이.
작은 온실 안 풍경.
큰 온실로 옮겨오니 허브티를 즐길 수 있는 작은 쉼터가 있다.
허브티 로즈힙스. 피부에 좋은 거라고 한다. 요거 한 잔 마셔서 피부가 좋아졌으려나...^^
쉼터 바로 옆에 작은 꽃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았다. 꽃들만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빛사이로 꽃그림자들도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요렇게 장난을 치다가...
요렇게 분위기 잡고 있는 타코.
유난히 낯은 가려서 모두 조심스러워 하는 지빈공주. 지지난해 타코 생일 바로 전에 태어난 우리집 막내둥이다.
이번 여행에서 털보가 가장 좋아했다. 모처럼 떠난 여행이기도 했고 동생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더 좋아했다.
허브 공원을 나와 대관령삼양목장에 들렀다. 삼양목장은 대관령 옛길을 따라 나있는 목장이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좁고 비포장도로로 이어져있다. 삼양목장 정상에 오르니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왔으니 폼은 잡아야지. 타코가 신나게 폼을 잡는다.
선자령에 두 번이나 올랐지만 이번처럼 풍력발전기가 정신없이 돌아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쉼없이 돌고 있는 풍향계가 아닌 풍력발전기^^. 근데 사진으로는 서있는 것 같다.
저 멀리 털보랑 큰고모 승현이가 풍력발전기를 향해서 걷고 있다.
갑자기 뛰어서 내려오는 승현이랑 큰고모.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바람불어도 아이들은 눈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눈밭에 앉아있기만 해도 좋아한다.
이런 비포장 도로를 달려서 목장 정상까지 차로 오른다. 평소에는 대관령 옆에 선자령으로 정상에 올랐는데 삼양목장으로 오르니 한달음이다. 7천원이라는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봄철에 오면 너른 풀밭에서 양떼를 볼 수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한번 가볼만하다.
강원도의 푸른 빛은 바다를 닮았나보다. 푸른 빛과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흰 눈, 그리고 쌩쌩 불던 바람까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푸른 빛이다.
요긴 어딘가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와 두루미가 만나던 장소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딜까 궁금했는데 이곳이 삼양목장 안에 있었던 것. 새삼 베토벤 바이러스에 푹 빠진 타코가 설정 샷을 잡는다. 지난 가을 입시 중이라 보지 못했던 타코가 요즘 다운받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나무 앞에서 아빠와 한 컷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