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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삶의 터전으로 바라본 개미마을 다녀오기



"아~아~, 알려드립니다. 부침개 드시러 오시기 바랍니다~."

마을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흘러나온다. 방송과 함께 이곳 저곳에서 빼꼼히 문이 열리면서 한 분 두 분 어르신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몸을 내미는 것은 문 앞까지. 그 자리에서 다리를 손으로 가르킨다. '아, 나는 다리가 아파서 못 가~'라는 몸짓이다. 마을의 평상까지는 빤히 눈이 닿는 거리지만 다리가 아파서 그곳까지 오기도 어렵다. 그러자 봉사나온 학생들이 부침개를 접시에 나눠들고 '다다다다' 튀어 날듯이 어르신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혹시 어느 시골 마을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풍경을 빚어낸 곳은 엄연히 서울이다. 홍제 3동에 위치한 개미마을이 바로 그곳이고, 그 마을에서 있었던 어느 날의 풍경이다. 





개미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야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포털사이트 덕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그것을 나눠보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지난 11월 2일, 개미마을을 출사지가 아닌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 답사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따라 나섰다. 그 날은 짧아진 해가 겨울로 상당히 깊이 들어왔음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하지만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출발했으며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개미마을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탔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일행을 기다리던 중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자동적으로 내 카메라에 손이 갔다. 보통 때라면 장면을 훔쳐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할머니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랐다. 할머님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뷰파인더를 응시하는 내 눈에 담겨 할머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윽고 일행이 다 모여 마을에 오르려니 내가 타고 왔던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두 대가 교대로 바삐 움직이며 마을 주민의 발을 대신하고 있었다. 잠시 할머니의 힘겨운 걸음이 생각나 마을버스 운전사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 










답사는 마을지기 권오철님이 우리를 안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계단도 오르고 좁은 골목도 지났다. 블로그에서 많이 보던 벽화도 직접 보았고 마을 수퍼인 동래수퍼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도 잠시 머물렀다. 그런데 예쁜 마을버스 정거장이 그려진 그곳이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것. 호기심 많은 일행은 직접 그 안을 들여다 보았고 요즘은 일명 푸세식 화장실을 생태 화장실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생태 화장실이란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웃었다.









약 1시간 가량의 마을 답사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주민센터에 다시 모였다. 그 자리에서 권오철님은 "처음부터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을 주민들이 반겼던 건 아니었다. 주민들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같다며 거부감을 심하게 드러냈다 "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에 이 마을이 벽화가 그려진 아름다운 마을로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도 집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며 마을주민들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일행 중에는 최효승 청주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도 함께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느 집 앞에 심어진 감나무가 인상적이었다며 이 마을을 감나무 마을로 만들라고 조언했다. 감나무는 버릴 데가 하나도 없이 좋은 나무로 칠덕(七德), 오상(五常), 오색(五色)을 뜻한다고 설명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열매 안팎의 빛이 똑같이 붉어 충(忠)이고, 이가 빠진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이며, 가을 지나도 변함없이 열매가 달려 있으니 절(節)'이라는 대목이었다. 

뿐만 아니라 벽화를 그릴 때는 좋은 페인트를 써줄 것과 계단을 의지해서 오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손잡이를 설치해줄 것을 당부했다. 건축학자의 꼼꼼함과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덕목이었다.



요즘 “돈벌면 뭐 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지...”라고 하는 개그가 한창 인기다. 무표정하며 자조섞인 투로 어떤 걸 하든 결론은 소고기 사묵겠지로 끝내는 삼단허무개그다. 

하지만 개미마을 어르신들은 달랐다. 봉사자들이 호박, 부추, 밀가루 등을 사들고 마을에 오르면 칼질 서투른 봉사자를 대신하여 호박 채썰기를 도와주신다. 능숙한 솜씨에 놀란 봉사자들이 탄성을 지르면 어르신들은 직접 칼질도 가르쳐 주신다. 노릇노릇 구워내는 부침개를 뒤집는 것 또한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에게 또 하나더 배워간다.  

일방적으로 누군가 주기만 하고 누군가는 받기만 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지글지글 기름냄새 솔솔 풍기며 주민들과 봉사자들이 함께 나누는 곳, 이 곳으로 오는 사람도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마음이 열리는 곳, 그곳이 개미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