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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마당깊은 집

"길남아, 길남아"
나는 눈을 떴다. 옆에 있던 거지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내 앞에 검정 무명치마폭이 펼쳐져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올려다보았다. 눈물 그렁한 슬픈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 눈과 마주치자, 나는 부끄러워져 머리를 다시 무릎 사이에 처박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가자. 집에 가자고."
어머니는 그 말만 하곤 앞장을 섰다. 어머니는 손에 쥔 손수건으로 물코를 팽 풀더니 눈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어머니를 뒤따라 역 광장으로 나섰다. 어슴새벽으로 건물 위 하늘이 희부옇게 터오고 있었다. 나는 팔려가는 처량한 망아지 꼴이었고, 선례누나를 따라 대구로 올 때의 마음이 그랬다. 아니, 나는 나쁜 일을 한 뒤 숨어다니다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마당깊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게 한마디 말씀도 없었다. 당신은 묵묵히 걷기만 했지 내가 따라오는가 어떤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침 밥상을 받자, 콩나물과 대파 건더기 사이에 쇠고기 기름이 동동 뜨는 고깃국이 내 밥그릇 옆에만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뒤로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며 벽덕이 죽 끓듯 했지만 그 순간만은 내가 어머니 아들임을 마음 깊이 새겼다. 목이 메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었다.
---------김원일, 문학과 지성사, 1988년 발행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은 육이오소설이며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전쟁 이후에 집도 잃고, 가족도 잃은 사람들이 집, 아니 방 한 칸만으로도 차가운 바람을 막아가며 살아냈던 가족을 그린 소설. 집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 당시 집이란 아마도 전부였을 것이다. 집이며 가족인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 엄마가 우리 가족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셨던 옛 시절이 생각난다. 그 당시는 참 가난했다. 모두들...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억척스럽게도 살았다. 그 시대의 길남이가 우리의 오빠이며 그 시대의 길남이 어머니가 우리의 어머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