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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모운동 _ 시 _ 이재훈






모운동(募雲洞)

 

___ 이재훈



최초로 지상의 하늘을 보여준 건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하늘을 이고 다녔고


광업소 앞에는 검은 작업복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광부들은 하늘을 보며 눈살을 지푸렸는데 


하늘이 너무 무거워 그런 거라고 했다 


옥동중학교 창가로 새어드는 햇살 


나는 학생들의 까까머리 위로 날리는 백묵가루를 


손에 쥐려고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무 강단에서 하루 종일 백묵가루를 마셨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의 어깨엔 하늘이 뱉어놓은 


검은 말의 찌꺼기가 내려앉았다 


비가 새는 방에 누워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려고 


양은냄비를 머리맡에 놓아두기도 했다 


그런 날엔 노래부르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목이 마르면 냄비에 고인 빗물을 벌컥 들이켰다 


하늘이 내게 준 건 달았다 


관념의 허위와도 곤궁한 생활과도 바꿀 수 없는 


쓸쓸함을 하늘에게서 배웠다 


그땐 겨드랑이 밑에 어둠이 있었는지 몰랐다 


광부들이 하늘을 보며 왜 눈살을 찌푸리는지 몰랐다 


새벽녘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


방석에 축축이 얼룩진 영혼의 땀내 


내 슬픔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구름이 모인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우리는 그 해 그곳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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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닮아가는 사람이 있고

하늘을 닮은 집이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 모운동에는 하늘을 닮은 집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