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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시사- 안철수의 소리통 유세를 기억하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철숩니다."

"안철숩니다."

"귀중한 마음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귀중한 마음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지난 대선 때 소위 '소리통 유세'로 안철수가 가는 곳마다 펼쳐졌던 풍경 중의 일부다. 


안철수는 유세현장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없으니 당연히 소리가 뒤에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고 결국은 그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뒷사람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입에 대고 안철수가 먼저 한 마디 한 마디 끊어서 말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더 큰 소리로 그를 따라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소란스러웠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조용해지는 순간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안철수가 처음 시작한 소리통 유세, 즉 인간 마이크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이크가 되었고 그 소리가 모여 큰 울림이 되었다.


소리통은 그가 돈많이 드는 기존의 선거방식을 거부한 안철수식 유세였다. 이러한 유세는 새로운 안철수식 정치 실험이었고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보낸 소위 '안철수 교수의 편지'가 첫 시작이었다. 이 편지에는 "흑인들에게 법적 참정권은 주어졌지만 그들이 백인들과 버스를 함께 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였고 그것도 흑인들의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원칙과 상식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참여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결국 그가 보낸 편지는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답장으로 돌아왔다.


안철수의 편지가 안철수 식의 소통이며 전달매체라면 이번 인간 마이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유세를 지켜보는 내내 궁금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안철수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최첨단 디지털 문화의 한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아날로그적 방식인 편지를 선택한 점이나 울림통이라는 인간마이크를 사용한 점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큰 폭포를 만들어낸다". 영화 <파워 오브 원>에 나오는 대사다. 혹시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통은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은 비록 작은 물방울 같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변혁이라는 커다란 물줄기를 이룰 수 있다는 걸, 꿈꾼 것이다. 


안철수 편지의 답장처럼 정권교체라는 큰 울림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그가 보여준 소통과 소중한 꿈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이유다.



----------- 글 : 조기옥, 사진출처 : 경향신문(2012.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