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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곰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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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고약한데가 있다. 영화나 책을 히트칠 때 보지 않고 한참 지난 후에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누구나 다 보는 영화, 천만명이나 들었다는 영화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그 때 보거나 읽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도 힘들고 개그 프로에 패러디 될 때도 웃지 못할 때가 있다.

이철환이란 작가도 연탄길이란 책으로 한참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기억해두었던 작가였다. 그런데 이 작가가 cbs 라디오 프로에 출현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에 한번씩 고정게스트로 나오는 프로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고약한 취미 또하나...ㅎㅎ 이철환이란 작가의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히히... 그의 목소리에 따뜻함과 소박함이 묻어나왔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곰보빵이다.

나의 책에 대한 또하나의 버릇. 나의 학창시절은 책을 사볼 수 있는 넉넉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늘 빌려서 봐야 했다. 그때 다짐한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돈을 벌 능력이 생기면 빌려보지 않고 사본다는 것.^^ 책은 모름지기 사봐야 제 맛이다. 다 읽고 책장에 꼿히는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그냥 아무렇게나 쌓여있어도 기분 좋은게 책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 명일시장 안에 명일1동 새마을문고가 있다. 도대체 새마을문고는 언제쯤 이름을 바꾸려나... 참 끈질기게 살아남는 새마을... 하여간 그곳에서 곰보빵이란 책을 빌려 왔다. 빌려보는 재미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이 책을 반납하려니 마음은 좀 허전하네...ㅎㅎ 어쨌든 이 책을 빌려왔다.

"무슨 책 빌려 왔어?" 
"곰보빵"
"좋은 책 빌려 왔네"
"어떻게 알어? 읽어 봤어?"
"아니, 책제목이 곰보빵이잖어.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뜯어먹으면 되니까..."
"이그 정말 못말려..."
내가 책빌려 온 날의 대화다. 하여간 실없는 소리로 사람을 한번 웃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털보다. 히히..

오늘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가방에 챙겨서 나갔다. 완전 판단 착오였다.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고 어찌나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지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구구절절 아름답고 가슴아리고 슬픈 사랑이, 사람냄새 폴폴 나는 책이다. 이 책은 옆에 두고 사람으로 인해 힘들 때,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따뜻할 때, 비오는 날 창가에서 그냥 아무 페이지든 펼쳐 읽어보아도 좋을 책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행간 행간에서 작가의 사랑이 만져지는 따뜻한 책이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다녀간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 낸 것이다.----- 책 서두에서.

------ 곰보빵, 글 이철환, 그림 유기훈, 꽃삽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