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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는 세상

대화 2 -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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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란 책이 있다. 김현 선생님의 일기를 유고로 엮어 책을 낸 것인데 그 책에는 선생의 일상사에서부터 책을 읽고 난 후의 간단한 소감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갑자기 나는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행복한 책읽기라는 생각을 했다. 행복한 책읽기...

정말 행복하게 읽었다. 아니 행복하게 리영희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두꺼운 한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내가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녔다. 교회도 갔고, 등산도 갔고, 친구 집에도 갔고, 거래처에도 데리고 다녔다. 짬짬이 다른 책도 겸해서 읽으면서 두꺼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아주 행복하게...

'대화'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깐깐한 지식인의 면모를 아주 진솔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더구나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본질적으로 자유인이므로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는 리영희 선생. 따라서 이 이념에 걸맞게 선생 앞에 놓인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신인의 배신으로 경멸했으며 경계했다. 이는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삶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웠을까... 자기 신념과 그에 따른 자제와 인내가 얼마나 그를 힘들게 했을까... 그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의 말년이 있기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동시에 그 분과 한 시대를 살고 있는 행복은 나의 몫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p.516)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예수처럼 살려고 고행을 하다가 죽은 톨스토이의 말이다.

리영희 선생은 기독교 보수우익단체들의 미신과도 같은 몽매함을 뼈저리게 개탄하며 동시에 경멸하고 있다. 기독우익단체들의 미신과도 같은 몽매함 앞에 좌절하기도 했던 나도 같이 답답했다. 선생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심히 괴로운 측면은 있지만 딱히 선생께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종교가 사회에 대해, 무지몽매한 대중에 대해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가 종교에 대해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참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특히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 중에 이 부분을 기록해놓는 이유는 책을 읽는 내내 어느 부분 하나 불편한 게 없었는데 그의 기독교에 대한 부분에서는 내내 불편했다. 아니 불편했다는 건, 맘에 든다 안든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옳은 얘기이기에 불편했다는 뜻이다. 우리집 못난거, 내 자식 못난거 다 알지만 남이 욕하면 일단 우리집 편들게 되고 내 자식 편들게 되는 그런 심리 비슷한 것일게다. 그렇다고 못난거 편들겠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니 편들다니 오히려 선생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심히 분개하기까지 하고 있다. 내가 불편했던 건 아직도 나는 그 안에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나의 이런 얼버무리는 태도 때문이리라. 이런 태도를 경멸하며 경계까지 하는 선생이니... 나의 이 애매모호한 태도가 내내 불편했다는 말이다. 굳이 위안을 삼는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는 걸 위안삼는다는 것 뿐이다. 이 얼마나 덜떨어진 자위이며 맥없는 위안인지...

리영희의 '대화'는 단 두번의 글쓰기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선비다운 선비, 신문쟁이다운 신문쟁이와의 달콤한 데이트였다. 선생에게 배운 학생들은 행복하였을 것이며 선생이 쓴 글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뜬 독자들은 행복하였을 것이다. 이 책이 어떤 책이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 다만 이 책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를 말하라면 자유이며, 평등이라고 하고 싶다. 지식인 리영희가 펜의 힘으로 어떻게 그렇게 막강한 군사정권들과 싸웠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건 그의 자유의지의 발로였으며 지식인의 의무였던 것이다. 그의 펜은 자유였으며 그의 펜은 고독했으며 그의 펜은 사랑이었다. 그의 자유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리영희와 대화해보라.

마지막으로 선생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내 몰래 책을 사서 볼 때의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신문기자로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선생은 책을 사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몰래 집밖에 숨겨뒀다가 집에 들어가서 씻고 저녁먹고는 다시 나와서 그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책장에 꽂아놓고 읽었다고 한다. 옛날 선비들은 가난하여도 책만 읽고 공부만 했다고 한다면 리영희식 선비는 가난한 아내에게 마음만은 아프지 않게 노력한 것 같아 그의 마음씀씀이가 더 인간적이라서 마음에 든다.

행복한 책읽기를 끝내면서 진정한 자유인이며 이 시대의 올곧은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건강을 빌지 않을 수 없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 있다. 아마도 선생이 그런 분일 것이다. 건강이 좋아져서 선생이 좋아하는 등산을 조금씩 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