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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이야기

남해 보리암에서 들은 빗소리...




낯선 사람과, 아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아니지,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라도,
같이 마주앉아 있을 때 약간의 침묵이 흐르게 되면 그건 정적이 된다.
그리고 다음 주제를 이끌어가기 위해 머리 속에서 말들을 끄집어내어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나는 사람들과의 친분관계에서 약간의 침묵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도, 약간의 침묵이 흐르게 하고,
차를 한잔하면서도 침묵을 대화로 삼기도 하며
한 잔의 맥주를 마실 때도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둘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약간의 침묵을 견디는 사람과,
그 침묵을 거북해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침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람들이랑 정서적으로 가깝다.
그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는 사람들과 아주 오래도록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침묵도 대화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짧은 정적이지만 그 기류가 아주 묘하게 흐르는 사람과는
나의 내부적으로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둘은 차 안에서 오래도록 같이 있었다.
어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가로등 불빛 하나만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가끔, 아주 뜸하게 차가 지나갔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으며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아주 오래도록 같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랑 같이 한 것은 차창을 두둘기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전부였다.

이때의 어둠은 빛을 대신하는 것이었으며
빗소리는 음악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둠에 몸을 묻었으며
빗소리로 온 몸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정적이 아주 오래도록 흐르고 있었다.
아니,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오랜 침묵이 흐르고, 온 몸이 빗소리에 젖어들자
우리는 그 어떤 찐한 정사보다 더 깊은 교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차 안에서 나눈 것은 낮은 목소리로 나눈 대화였으며
가벼운 키스였으며
맞잡은 손이 전부였다.

아니 가벼운 키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 차 안에서 무엇을 하진 않은 것 같다.
그냥 어둠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고
그냥 빗소리에 흠뻑 젖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흐르는 침묵 속에서 오래된 연인처럼 낮은 목소리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털보가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주저없이 남해 보리암 주차장에서 들은 빗소리였다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