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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가난한 이들 앞에 서서, 배가 얼마나 고프냐고 묻고 싶지 않습니다. 절망과 고통에 둘러싸인 이들 앞에 서서, 살기 얼마나 힘드냐고 묻고 싶지 않습니다.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지금 얼마나 아프냐고 자꾸 묻고 싶지 않습니다. 장애를 지닌 이들 앞에 서서, 사는 것이 너무나 고되지 않느냐고, 세상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속이 쓰리지는 않느냐고, 이제는 정말 묻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시절에는, 다른 이들보다 무언가 조금씩은 부족하거나 아픈 삶 안을 드나들면서 날 것대로 말해보라며 함부로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뀌고 삶이 더 나아질지 모르니, 한번 다 털어 말해보라 했습니다.
돌아보니 멋 부림이었습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 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어 품게 되었습니다. 이제 묻기보다는 곁에 섞여 지내면서 그저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억지로 찾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들이, 그리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
이제 보려하는 것은 단지 '하루'일 뿐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매일같이 주어지는 하루의 삶.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려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 하루들이 쌓여 삶이 되고 인생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기 마련인 귀한 순간들입니다. 생명으로 주어졌기에 두말 할 나위 없이 귀중한 한 개인의 작은 역사입니다. 그늘진 삶의 언저리를 한두 번 찾아가서는 이 안에도 희망이 있다는 식의 어설픈 작위를 내려놓고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과 그 가치를.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삶의 가치에 등수를 매길 수 없건만, 끊임없이 경계 짓고 구분 짓는 요즘 세상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겠건만, 점점 더 심해져만 갑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라고,.내어줄 것 없으니 그냥 살라고. 승부와 경쟁의 세상은 당당히 강요합니다. 비장앤의 몸짓과 같아져야만 인간승리의 영웅이라며 몸이 불편한 이들을 부추깁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등을 떠미는 것입니다.
한때나마 편견과 차별의 벽에 싸움꾼처럼 고정했던 시선을 거두고, 잠시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다소 길게 어느 삶의 하루들과 함께 하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티에이뿌리웁>, 지뢰로 팔다리를 잃거나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기술교육센터인 이곳은 바다 건너 캄보디아에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들여 깊이 들여다 본 이곳에서 저 스스로도 치유과 정화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그저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배웠습니다. 다시 돌아와 여전히 어지러운 이 땅에 머무는 지금, 함께 웃고 떠들던 옛 친구들이 참 그립습니다. --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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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따뜻한 사진전이니 같이 보러가자고 털보에게 말했습니다. 따뜻한 사진이면 사진에 열선이 깔렸냐라며 농담하면서 가볍게 출발한 사진전이었지요. 아, 물론 저야 이미 작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한겨레 웍크샵에 심사위원으로 임종진 작가님이 오셨었거든요. 그때의 인연으로 그분의 사진방을 들락거리면서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요. 얼마전에는 부산에서도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천만개의 사람꽃이라는 이름으로요. 그때 부산까지는 갈 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가까운 시일에 다시 서울에서 전시회를 하더라구요. 마음을 두고 있었던지라 오픈 때 맞춰서 가려고 했는데 또 일이 생겨서 그 다음날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예상에 전혀 빗나가지 않고 따뜻한 미소의 사람들을 만나고 왔지요. 거기서 들었습니다. 사진전 마지막 날 작게 프린트된 사진을 팔 것이라고. 그래서 꼭 사고 싶었습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뜻이 좋아서요... 그 뜻을 품고 있다가 아는 지인들에게 몇몇 문자를 돌렸습니다. 한 장씩 사달라고. 아무도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이 다 훈훈해졌습니다. 조용조용 시작하려 했던 마음이 이렇게 제가 아는 사람들과 나누다 보니 사진전보다 더 따뜻해져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급적 다른 사람들 다 사갖고 간 나머지를 들고 오려구요. 그 사진값의 절반은 좋은 일에 쓰이고 또 그 절반은 사진방 운영에 쓰인다고 합니다.
위 글은 사진전에 걸려있던 작가노트입니다. 그저 바라볼 뿐이라는, 그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의 삶이라는, 성찰의 글이 좋았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아픈 이에게, 힘든 이에게, 함.부.로. 묻지 않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이 뜨거웠졌답니다. 글씨에 색을 넣고 폰트를 키운 건 제가 했습니다. 제가 그 부분에 자꾸만 눈이 가서요...
제 말만 믿고 덜컥 사진을 사달라고 한 분들께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 같아서 이번 전시회 안내와 작가노트, 그리고 임종진 작가의 사진방 공식카페를 링크해둡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