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산새마을의 작은 안주인인 살구댁이 커피를 내준다. 우린 산새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메밀국수로 배를 잔뜩 채워 한 잔의 커피가 절실했기에 후루룩 마시고는 매실나무에게 우루루 몰려갔다. 매실나무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앞마당에 한 그루, 뒷마당에 한 그루였다. 에게게... 겨우... 우린 이 작은 나무에 얼마나 매실이 달렸는지 보지도 않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한 그루의 매실나무에 모두 달려들어 매실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나무 한그루에 주렁주렁 알차게도 매실이 달려 있었다. 참... 인간이란 어찌나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지... 비록 작고 연약한 나무지만 알차게 열매를 맺고 있는 매실나무에게 미안해졌지만 또 금방 간사하게도^^ 우리는 다같이 보들보들한 매실열매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수확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렸다.
어머님은 우리가 산새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이 태양이 가장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한낮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손수 아침 일찍 아침식사 전에 취나물이며 상추를 우리 세가족이 모두 충분히 갖고 갈만큼씩 보따리 보따리 미리 싸놓으셨다. 밭일을 해본 적이 없는 도시의 엄마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의욕만 앞서서 취나물을 뜯고 상추나 쑥을 뜯는다고 했으니 어머님 생각에는 걱정스러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나리를 뜯기로 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에서 자라는 산미나리는 밭과 밭 사이에 자잘하게 자라고 있었다. 정말이지 잠깐 쪼그리고 미나리를 뜯었는데도 머리 속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잔뜩 뜯은 미나리를 다 다듬고 나자 산을 한바퀴 휘~ 돌아온 남자 둘이 시원한 맥주를 사왔다. 사진은 산새마을의 작은 주인 승재씨. 우린 그를 산새마을님^^이라고 부른다.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내가 우리 털보없이 혼자 여기 있으니까 너무 좋다~는 말이 나와버렸다. 매실따고 미나리 뜯을 때만 해도 별로 생각나지 않다가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니 갑자기 내가 짝없는 혼자라는 걸 느끼고는 '털보없으니 섭섭하네' 하려다 말이 반대로 나와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진표엄마가 털보형없어서 섭섭하다는 줄 알았는데 좋다라고 하네.. 하며 내 마음을 한번 짚고 넘어간다.^^
갑자기 비가 후둑후둑 할 것 같아 뜯으려던 쑥을 뜯지 못하게 되자 하은이랑 나는 토끼풀로 화관을 만들며 놀았다. 화관 만드는 것은 하은이가 가르쳐 주었다. 책에서 읽고 만드는 법을 배웠다며 나에게도 가르쳐주는 하은이는 조그만 손으로 예쁘게 만들어 머리에 써보더니 나에게는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 목에 걸어준다. 하은이와 하은이 엄마. 하은이 손목에 걸린 팔찌는 내가 만들어서 하은이에게 걸어줬다. 하은 맘^^이 쓰고 있는 화관은 하은이가 만든 것이고, 하은이에게 배워 내가 만든 건, 하은이에게 씌워줬다. 머리에 걸 수 있을만큼 동그랗게 다 만들지 못한게 좀 아쉽다. 다음엔 정말 머리에 쓸 수 있을만큼 동그랗게 예쁘게 만들어보고 싶다.
하은이랑 토끼풀과 같이 놀고 있는 동안 각 집으로 가져갈 나물과 매실을 보따리 보따리 잘 묶어두었다. 이 보따리를 집에 가서 풀면 산새마을이 같이 따라오는 거겠지... 집으로 가져가 어머님께 보여드릴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강원도가 고향인 어머님은 밥상 가득 풀밭이면 그 날 음식 매우 잘한 것이다. 나물 요리를 잘 못하는 내게 있어 처음엔 그것이 고역이었는데 밥상이 즐거워야 행복하다는 가장 작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나물요리도 마다않고 하고 있다.
우리는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서 가려는데 어머님은 못내 쑥뜯지 못한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던 씀바귀를 한아름 뜯어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오신다. 순식간에 저렇게 많이 뜯으셨다. 물론 저 수확물은 우리집으로 왔다. 워낙 우리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걸 아는지라 다들 내가 들고 가는 것에 욕심내지 않고 내준다.
챙길 것 다 챙겨서 집을 빠져나오려는데 아버님이 들어오셨다. 젊은 친구들이 맘놓고 놀다 가라며 잠시 집을 비우셨던 아버님이 아들내외 얼굴이라도 보시려고 오신 것 같다. '아버지가 있었으면 닭이나 오리잡아 줬을텐데... 먹고 가지...' 하신다. 우리는 아버님의 말씀을 뒤로 한채 서울에서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오는데 다음에 와서는 꼭 먹고가라고 하신다.
그럼요, 아버님. 우린 벌써 가을도 예약해놓고 가는 길이예요. 이렇게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감따러 와야지요. 그때 닭잡아 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서울로 서둘러 올라왔고 열심히 일한 털보를 만나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식사와 술을 곁들여 한 잔했다. 올해는 등산 한 번도 같이 가지 못한 회포를 김포 산새마을에서 풀고는 수많은 어록^^을 남긴채 다음 가을여행을 기약하며 즐거운 산새마을에서의 하루를 접었다.
PS. 우리가 여행할 때마다 듣는 메인 뮤직인 Smoke on the water. 이 음악을 가장 나이어린 진표랑 가장 나이많은 털보랑 같이 들으며 헤드 뱅뱅을 한다. 진표가 눈높이가 높은건지 털보가 눈높이가 낮은건지^^... 어쨌거나 우린 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온다. 이번 여행에 털보가 빠지는 바람에 이 음악이 빠졌다. 하여 아쉽지만 배경음악으로라도 들으면서 이 글을 읽으면 서울에서 일한 털보도 같이 여행한 기분이 좀 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