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바쁘게 일하는 중인 지난달 말경에 이웃 블로그에서 말과 글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말과 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던터라 그 바쁜 와중에도 그 글을 읽고 계속 생각하며 고민했다. 나에게 있어서 말이란 어떤 것이며 글이란 어떤 것일까...
맨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사실은 이웃 블로그의 남편되시는 분이 아내의 글 밑에 짧막한 글을 두줄 남겨두었었다.
기록하지 않으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짧막한 글을 읽고 그때의 내 심정을 한줄로 정리하여 세줄의 글로 완성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길이 보는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딱딱한 느낌의 글이 아니라 아내에게 부드럽게 채근하는 글로 보였었다. 여보, 기록하지 않으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이런 느낌이었던가... 하여간 어떤 문장이었든 그 문장을 읽던 내가 받은 느낌은 부드러운 독려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만의 블로그가 없었다. 내 남편의 블로그에 얹혀서 그냥저냥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아는 사람이 들어오면, 아니 둘이 같이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까 거의 다 아는 사람인지라 인사도 하면서 그렇게 남편 블로그를 내 블로그인양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의 블로그가 내 블로그가 아니라는 걸 명.확.히. 깨닫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남편의 블로그는 내 블로그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남편의 블로그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남편의 글을 보고 마치 내가 남편과 같이 생각하는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글도 그렇게 쓰지 못하면서 그의 글이 내 글인양,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인양, 그렇게 오래도록 착각하면서 살았다.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내 글인양, 내 생각인양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을텐데 그 명.확.한 사건으로 인해서 남편과의 거리가 화~악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의 글도, 남편의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니라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의 내 심정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생각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서 이리 쿵 저리 쿵 하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기만 할 뿐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고, 생각이 가라앉지도 않고, 그냥 붕 뜬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만난 저 두 줄의 문구는 내 고민을 일시에 해결해줬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기록하지 않고 살았다. 그저 짧막한 일기 두어줄 쓰는 걸로 떼우면서 살았으며 직업이 직업인만큼 글쓰기보다는 그때그때 남의 글을 읽고 그걸로 끝이었다. 남의 글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남의 글을 읽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장식해 줄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읽기에 편할까에만 신경써왔던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내 글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 남편이 쓴 글을 마치 내 글인양 착각하며 살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내 길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시작이 기록이었다. 그때는 무조건 아무 것이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많은 글들이 매일매일 내가 나에게 기록하는 글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나를 기록하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고, 생각을 정리하니 갈피를 잡을 수 있었고, 그리고 오리무중으로 깜깜하기만 했던 보이지 않던 길이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말과 글에 관한한 어린 아이와 같다. 어린 아이 수준으로 말하고 어린 아이 수준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글과 말이 내 모습을 다시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다. 말과 글에 관한한 밴댕이와 같은 우리 남편이 고맙다. 가끔 지나친 잔소리가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이제는 그닥 밉지는 않다. 말과 글에 관한한 남편은 나에게 스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끔 스승을 스승 대접하지 않는 못된 제자이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신경을 거슬리는 말이나 글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내 글과 내 말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며, 그 고민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온전한 내 말과 내 글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맨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사실은 이웃 블로그의 남편되시는 분이 아내의 글 밑에 짧막한 글을 두줄 남겨두었었다.
기록하지 않으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짧막한 글을 읽고 그때의 내 심정을 한줄로 정리하여 세줄의 글로 완성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길이 보는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딱딱한 느낌의 글이 아니라 아내에게 부드럽게 채근하는 글로 보였었다. 여보, 기록하지 않으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이런 느낌이었던가... 하여간 어떤 문장이었든 그 문장을 읽던 내가 받은 느낌은 부드러운 독려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만의 블로그가 없었다. 내 남편의 블로그에 얹혀서 그냥저냥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아는 사람이 들어오면, 아니 둘이 같이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까 거의 다 아는 사람인지라 인사도 하면서 그렇게 남편 블로그를 내 블로그인양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의 블로그가 내 블로그가 아니라는 걸 명.확.히. 깨닫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남편의 블로그는 내 블로그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남편의 블로그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남편의 글을 보고 마치 내가 남편과 같이 생각하는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글도 그렇게 쓰지 못하면서 그의 글이 내 글인양,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인양, 그렇게 오래도록 착각하면서 살았다.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내 글인양, 내 생각인양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을텐데 그 명.확.한 사건으로 인해서 남편과의 거리가 화~악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의 글도, 남편의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니라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의 내 심정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생각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서 이리 쿵 저리 쿵 하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기만 할 뿐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고, 생각이 가라앉지도 않고, 그냥 붕 뜬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만난 저 두 줄의 문구는 내 고민을 일시에 해결해줬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기록하지 않고 살았다. 그저 짧막한 일기 두어줄 쓰는 걸로 떼우면서 살았으며 직업이 직업인만큼 글쓰기보다는 그때그때 남의 글을 읽고 그걸로 끝이었다. 남의 글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남의 글을 읽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장식해 줄 것이며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읽기에 편할까에만 신경써왔던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내 글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 남편이 쓴 글을 마치 내 글인양 착각하며 살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내 길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시작이 기록이었다. 그때는 무조건 아무 것이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많은 글들이 매일매일 내가 나에게 기록하는 글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나를 기록하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고, 생각을 정리하니 갈피를 잡을 수 있었고, 그리고 오리무중으로 깜깜하기만 했던 보이지 않던 길이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말과 글에 관한한 어린 아이와 같다. 어린 아이 수준으로 말하고 어린 아이 수준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글과 말이 내 모습을 다시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다. 말과 글에 관한한 밴댕이와 같은 우리 남편이 고맙다. 가끔 지나친 잔소리가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이제는 그닥 밉지는 않다. 말과 글에 관한한 남편은 나에게 스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끔 스승을 스승 대접하지 않는 못된 제자이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신경을 거슬리는 말이나 글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내 글과 내 말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며, 그 고민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온전한 내 말과 내 글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