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날려 죽음을 택한 날로부터 오늘까지 무엇 하나 허둥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믿기는 어렵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시청의 한 복판에서 당신을 보내고 왔습니다. 분명 보내고 왔는데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5월 23일 토요일 새벽에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자살이라니요... 어떻게 당신이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요. 앞이 캄캄 했습니다. 순간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며칠전 나의 친정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목놓아 울고나자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구순이 가까와오는 노인이 아프다는 사실이 무어 그리 슬프겠습니까? 하지만 엄마가 기억을 잘 못하면서 깜빡깜빡 정신을 놓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슬펐습니다. 우리 엄마의 기억력은 누구보다 총명했거든요. 7남매의 생일에서부터 7남매가 낳은 손주들의 생일, 그리고 1년에도 수없이 계속되는 제삿날까지 누구보다 총명하게 기억하셨기 때문에 우리 엄마의 치매기는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며칠동안 허둥되며 울었더니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되면서 사람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나에게 엄마의 아픔만큼이나 머리 속을 하얗게 만들며 그 어떤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고, 그 어떤 말들도 내뱉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왜냐하면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살을 선택한 날도 아는 지인들과 함께 나물뜯으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고 그 다음날은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월말에 나에게 놓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일들을 처리하려면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정신 차릴 수 있었거든요. 더구나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힘들어 흘린 눈물이 당신의 죽음과 겹쳐서 너무 서러울 것 같았습니다. 목놓아 울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목놓아 울지 않았습니다. 나의 울음이 당신의 죽음이 슬퍼서인지, 엄마의 아픔이 슬퍼서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을 보도하는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순간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흐르는 눈물은 주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더이상 펑펑 울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깨물었습니다. 이 슬픔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거든요.
아, 제가 하는 일은 책을 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월말에는 바쁩니다. 그런데 이번달에는 필자들이 다같이 손을 놓고 있는 모양입니다. 원고가 오질 않았습니다. 나도 허둥대는데 필자들이라고 다를까요... 나도 이렇게 황망한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원고 독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심정 충분이 이해가 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신을 보내야 하는데, 분향소는 마련이 되었다는데, 나는 쉽게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비록 필자들이 원고를 보내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있는 자리를 뜨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필자들을 이해하지만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당신을 보내는 그 자리에 최대한 늦게 가고 싶었다는 말이 더 정직한 고백입니다. 최대한 미루고 미뤄서 당신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보내는 마지막 날인 29일, 그 날만큼은 당신을 보내야 하는 날입니다. 필자들이 서둘러 원고를 넘겼습니다. 당신을 보내야 하는 29일에도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정녕 당신을 볼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당신을 보내야 하는데 당신의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면 나는 내 방식으로 당신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보낼 수 없었거든요. 저는 당신을 보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당신을 보내기로 한 시청을 한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으로 당신이 봉하마을 떠나 그곳으로 온다고 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시청 앞에 도착했을 땐 아직도 시청 잔디밭에는 차벽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덕수궁 앞에는 당신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밤을 새워 기다리고 있었구요. 당신이 오기 전에 다시 시청 앞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깜빡깜빡 잠이 왔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저히 잘 모르겠더군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지, 애통해 해야 하는지... 당신의 죽음을 접한 날부터 당신을 내 방식으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 할지 그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의 남편이 먼저 당신을 보내러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더군요. 아무 말없이 당신을 보내기 위해 시청으로 출발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으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당신을 마중나갈 채비를 차렸습니다. 검정색 옷을 입으려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는 순간 시청 앞에 이미 모인 사람들이 노란 풍선과 노란 옷을 입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더군요. 맞습니다. 당신은 검정옷을 입고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나도 노란옷을 입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옷을 다 입고 꼬박 밤을 새고 당신을 마중나가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한숨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한숨 잠이 들었습니다. 딱 한숨이었습니다... 노란옷을 입고 집을 나서니 어떻게 당신을 보내야할지 결정이 되었습니다. 당신을 슬프게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축제처럼 보내고 싶었습니다.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깃발을 휘날리며 당신이 평소에 좋아했던 상록수를 부르며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슬퍼하지 말자고.. 애통해도 하지 말자고.. 가는 님 가시는 길 편하게 보내드리자고요...
광화문에 내리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모자를 쓰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 모였더군요. 당신을 가장 못살게 굴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경복궁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식을 생중계 하고 있었구요. 힐끔힐끔 당신을 수없이 흔들어놓았던 두 신문사의 전광판을 나란히 올려다보았습니다. 선명하게 조선일보라고 찍혀있더군요. 바보 노무현을 흔들어놓았던 거대 신문사, 언론이라는 사명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던 신문사, 고졸 대통령 당신을, 비주류였던 당신을, 철저한 외톨이로 만들어놓았던 신문사 전광판에서 당신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전광판을 응시했습니다. 표리부동한 언론, 언론의 사명을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 납짝 엎드린 언론, 그 언론사 중계판을 조용히 올려다 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시청 앞으로, 열린 우리의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발디딜 틈이 없더군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노란 풍선이 간혹 하늘로 솟아 올랐습니다. 순간 머리속이 노랗게 되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 속에서 밀리고 치이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발 한번 잘못 디디면 당신을 따라서 노랗게 떠오르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번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시청 앞 나무 밑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나는 어떻게 당신을 보내야 하는지를요...
왜 그렇게 내 방법으로 당신을 보내야 하느냐고요? 당신의 방법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왜 종교지도자도 아닌데 종교지도자들처럼 순교의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의 여느 대통령처럼, 보통의 정치인처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 왜 순교자처럼 모든 것을 짊어지고 당신의 가벼운 몸을 날려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는지요..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 혼자 다 짊어지고 그 차디찬 바위에서 몸을 날리셨는지요..
당신을 혼자 그 부엉이 바위에 서있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나의 미안함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장로님 대통령을 모신 그 슬픔이 더 미안합니다. 참담합니다. 전두환 노태우보다 더 비열하고 야비한 정권 앞에 비참하게 스러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너무나 미안합니다. 그래서 참담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기에 더욱 미안합니다.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절절히 애통합니다. 장로님 대통령을 대신하여 당신에게 무릎끓어 사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더욱 슬프고 참담한 것은 전두환 노태우가 총칼로 정권을 잡았다면 MB정권은 토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점이 더욱 참담하고 참담합니다. 총칼로 뽑힌 대통령은 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보면서 두려워했지만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전혀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나의 남편은 작은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수술날짜를 대통령 선거일 다음날로 잡았습니다. 수술하고 몸이 회복되지 않으면 투표장에 갈 수 없다며 당신에게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일 다음날로 수술 날짜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당신에게 던지고 싶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수술 날짜를 미루는 것도 기꺼운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당신은 어렵게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날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서 장청소를 위해 먹으라고 준 약이 탈이 되어 엄청난 피를 쏟았습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졌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달려가 의사를 기다렸지만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 때문에 접수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대기 순번을 버리고 병원문을 밀치고 들어가 의사에게 보였습니다. 의사도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가벼운 병이었는데 이미 많은 피를 쏟아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급하게 헌혈을 받으면서 수술 준비를 하였습니다. 얼굴 색도 돌아오고 입술의 핏기도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입원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애정에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노사모 회원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노사모 회원이었지요.. 노는 것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노사모였지요..
당신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 각별했기에 당신이 힘들 때마다, 아니면 당신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할 때마다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소중한 한 표가 있으니 당신 힘내시라고, 그리고 힘없고 빽없는 사람,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잘 해달라고.. 하지만 당신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곁에는 당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같은 사람이 무얼 그리 힘이 되겠냐고, 그저 소중한 한 표가 있었다고, 나의 한 표로 당신을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충분하였기 때문이지요.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신께 이 편지를 쓸걸 그랬나봅니다. 이렇게 붙이지 못할 편지를 쓰지 말고 당신이 살아서 우리 곁에 있을 때 부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당신이 우리 곁에 없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당신의 죽음 앞에 하나 더 미안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을 끝까지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성경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욱 크다고 하였는데 나는 당신을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화 세력을 하나로 엮을 수 있었는데 분열했습니다. 그때의 실망이 너무 컸나봅니다. 당신에 대한 기대를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이 아니라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눈으로 당신을 판단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떠났습니다. 당신의 깊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떠난 사람들은 이 야비한 MB 정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권은, 그 정권 아래 있는 권력에 빌붙은 검찰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아니, 죽음으로 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갈기갈기 당신을 찢어놓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다 찢겨지고 벌거벗겨진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야비한 정권입니까. 하지만 당신은 이 야비한 정권에게 당신의 죽음으로 깨끗하게 마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당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야비한 정권의 정점에 장로님 대통령이 계시기에 더 미안합니다. 적극적으로 장로님 대통령의 반대편에 있어야 했는데 방관하고 있어서 미안합니다.
다시 시청 앞에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시청 앞 나무 그늘 아래서 외쳤던 함성을 기억합니다. 노제 말미였습니다. 노제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외치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기에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지만 펑펑 울지도 않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도저히 미안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펑펑 울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에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당신 앞에 얼굴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창피했습니다. 순교자처럼 몸을 날린 당신의 죽음 앞에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초라한 모습, 이 자괴감은 도저히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직 마음에서는 당신을 떠나지 않았는데 저녁에 들어와 텔레비전 앞에 앉으니 당신은 수원 연화장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오열했습니다. 나도 오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오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직도 당신의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열렬히 지지했던 내가, 당신에 대한 지지를 걷어들인 애증의 표현도, 당신을 야비하게 몰았던 정권에 대해 사죄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당신의 죽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당신을 뜨거운 눈물 속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 부부는 당신들을 처음부터 열렬히 지지했고 중간에 당신의 지지를 거둬들였던 나와는 달리 당신에 대한 지지를 변함없이 보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슬퍼했으며 애통해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그들보다 더 예수님의 제자처럼 살고 간 당신을 절절히 슬퍼했습니다. 비록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지만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몸을 날려 죽음을 선택한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 당신이 그렇게 살고 갔기에 더욱 도전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시청 앞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닮아 있는 당신을 끝까지 믿어주지 못한 자괴감, 그리고 미안함, 안타까움 그런 것들 때문에 당신을 놓아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님처럼, 죽으심으로 다시 사는 부활의 예수님처럼, 당신의 죽음 앞에 뿌려진 노란 작은 씨앗들을 시청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젊은 설교자의 용기있는 고백을 통해서 비로소 당신을 놓아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당신의 가시는 길이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곳에서는 이곳에 대한 바보같은 미련을 버리고 그저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죽음으로 새로 뿌려진 작은 민주주의 씨앗들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당신은 충분히 볼 권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전두환 노태우에게 살았있음에 대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간 당신은 부엉이 바위에서 날아오르는 노란 작은 씨앗들이 이 땅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자라는지 지켜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히 평안하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