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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보는 세상

지리산 둘레길 아쉽게 맛만 본 이야기

2010년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지리산 언저리로 잡은 건 우연이었다.  원래는 서울에서 얼굴만 보기로 했던 것. 그런데 친구가 지리산 근처 콘도를 예약했으니 그곳으로 날르자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 떠나자고 하면 언제나 흔쾌히 오케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우린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떠나기로 결정만 하고 가고 오는 길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 그러나 날짜가 다가올 수록 가고 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결론은 일박이일 일정으로는 빠듯하다는 생각에 시간이 허락되는 친구들은 이박삼일 일정으로 하루 먼저 출발, 그러니까 먼저 출발한 팀과 나중에 합류할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먼저 출발한 우리는 하동 악양에 살고 있는 시인을 만나 하루를 보내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와 섬진강도 둘러보고 지리산에서 나중에 내려오는 친구와 합류했다.  오늘의 포스팅은 우리 친구들이 모두 합친 마지막 날 둘러본 지리산 둘레길이다.

우리가 묵은 일성 콘도 주변은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구간, 인월과 금계를 잇는 최장 구간 사이에 놓여있었다. 이 구간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 1박2일에서 강호동, 은지원이 걸었던 길이라고 하면 더 잘 아는 코스다. 우리는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3코스 중간인 상황마을에서 올라 금계마을로 내려오는 아주 짧은 구간만 걸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 둘레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마을이든 오르면 둘레길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상황마을 버스 종점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일행들이 오르고 있다.


다랭이 논이 펼쳐지는 구간이다. 이곳이 강호동 은지원이 헬기로 다랭이 논을 촬영했던 곳.


상황마을에서 얼마 오르지 않으니 등구령 쉼터가 나온다. 강호동 은지원은 등구재를 넘어서 이곳에 도착했고 우리는 반대로 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쉬었다는 곳에 우리도 잠시 들러 쉬었다.

쉼터에 들르니 나홀로 다방이 나온다. 주인의 센스가 나홀로 다방 팻말에서도 보이고 나홀로 다방 안에 앉으면 지리산 이쁜이의 자작시도 붙여져 있다. 재래식 다방이지만 냄새가 심하진 않았다. 재를 이용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큰 일을 보고 나면 재를 퍼서 뿌려주면 냄새도 나지 않고 거름도 된다고 한다.

이곳이 나홀로 다방. 냄새 폴폴 날 것 같고 작을 것 같지만 안은 넓고 냄새도 없었다. 

물레방아 옆에 철쭉이 얼음꽃을 피웠다.

이곳 별미는 단연 배추전이다. 다들 아침 식사를 하고 오른 산길이었는데도 쉼터에서 먹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 배추의 고소한 맛이 단연 최고였다.

맛있는 배추전 때문에 갑자기 행복한 자리가 된 친구들. 특히 털보는 청국장을 맛있어 했다. 내가 청국장은 맛있게 끓이기가 힘들다고 했더니 주인장은 이곳 청국장은 가져다 끓이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청국장도 한 통 사왔다. 결론은 정말 맛있다. 청국장 끓여서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리산 둘레에 있었지만 그리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논 고랑 사이 사이에 얼음이 얼어 있다.

이곳이 정상임을 표시해주는 등구재. 

마을을 둘러가는 길이라 중간 중간 마을 사람들의 선산이나 묘지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면 이런 표식을 붙였을까 싶다.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되가져가지 않는 쓰레기가 엄청 많아졌다고 한다. 일부 마을은 사람들이 민원을 넣어서 그 마을을 지나가지 않고 돌아가게 했다고 한다. 여행객이 많아질 봄이 되면 더 걱정이다. 

등구재를 넘으니 바로 하산길. 키 큰 나무들과 흙길이 반갑다.

산 중턱 쯤에 있는 작은 연못. 이 연못을 뒤에 두고 앞을 바라보면 천황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이 바라보이는 지리산의 네 봉우리들.  왼쪽부터 하봉, 중봉, 천황봉, 세석봉.  위로 솟은 네 봉우리만 세워보면 되니까 맞춰보시길.^^

하산길에 친구 부부 한 컷.

갑자기 마구 셧터를 눌러댔더니 친구는 스타가 된 기분이란다. 스타가 뭐 별건가. 우리가 만들면 스타지~.^^

등구재를 넘어오니 또 이어지는 다랭이 논. 이 험난한 산을 개간해서 밭을 일구어 살았던 지리산 사람들. 이제는 그 길을 여행객에게 내어주고 있다.

여행객에게 알리는 문구도 참으로 정스럽다. 

산을 깎아 만든 논들. 돌의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저걸 다 어떻게 이어 날라다 밭을 만들었을까. 자꾸만 그 고단한 삶이 떠올랐다.

지나는 여행객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했더니 네 봉우리에 촛점을 맞추고 우린 흐릿하게 찍어주었다. 그래도 기념으로 한 컷.

이제 봉우리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밥지을 시간은 아닌 것 같고, 마을에서 뭔가를 태우고 있는 듯. 괜히 시골 마을에서 연기가 오르면 밥짓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지리산 둘레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을 사람들은 귀찮아졌지만 지리산은 편안해졌단다. 이번 둘레길의 아쉬움을 지리산 종주로 달래보고 싶다.

밭 위에 놓인 트랙터,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집. 사는 이의 삶은 고단할지언정 여행객들의 눈에는 모두다 한가롭게 보인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에 여행객이 묵을 시설들을 짓고 있었다. 마을과 밭의 형세에 따라 지어지는 것이 전체적인 풍경을 깨뜨리지 않아서 좋았다.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어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쉬었을 쉼터 그리고 큰 나무. 오래된 풍경인 듯 아름답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을 약간씩 개조해서 여행객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그림을 그려넣은 이 집도 민박집인 듯. 그림벽 민박집이란 이름도 예쁘다. 

지리산 둘레길에 여행객이 많이 몰리긴 하는가보다. 할머니들이 나물 말린 것, 콩, 무우 말랭이 등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이 할머니들의 물건을 많이 팔아주었다. 나는 토란대나물, 고구마 줄거리, 콩, 호박 말린 것을 사왔다. 하나같이 맛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할머니들은 셈이 빠르질 않다는 것. 돈을 받고도 어리둥절. 옆에서 바라보는 우리도 많이 즐거웠다. 사진을 찍자 가운데 할머니가 돈을 챙겨받고 즐거워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 친구에게 젤로 예쁘다고 하시던 할머니. 물건도 샀겠다 이때다 싶어 카메라 셧터 마구 눌러대니 "그만 찍고 가~" 라고 하시던 할머니. 할머니 뒤로 두 할머니는 아직도 셈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가운데 할머니가 열심히 계산해주고 계신다. ㅎㅎ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풍경을 만나도 좋고, 사람들을 만나도 좋았다. 풍경은 천천히 다가왔고 사람들은 반갑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