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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이야기

촛불 소녀들 고마워요~

요즘은 덜 하지만 예전에 운동경기를 볼 때, 우리는 왜 경기를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는지, 왜 죽기 살기로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특히 국가대항전을 볼 때면 더더욱 그랬다. 한일전은 그 어떤 경기든 지금도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된다. 이 몹쓸 비장함..

우리 때 시위도 그랬다. 무슨 구호 하나를 외치려면 저절로 비장해지면서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찌 비장하지 않을 수 있으랴. 눈 앞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친구들이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현장을 보고 있는데 어찌 비장해지지 않을 수 있을랴. 우리 때는 학교 음악 방송에서 양희은의 아침 이슬만 나와도 문제가 되는 때였다. 몇년 전 노무현 탄핵반대 시위 때도, 미선이 효순이 시위 때도 나는 눈물이 났다.

그러나 어제 참가한 촛불시위는 우리 때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비장함은 어디로 가고 사뭇 재밌어졌다. 요즘 말로 시위가 쿨~해졌다.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유머가 있고 촛불이 있다. 마이크를 잡은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가끔 깨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 그러면 어떤가. 자유롭게 누구나 말할 수 있으니 그것도 상관없다. 월드컵 4강 이후, 나는 축구경기를 봐도 이제는 느긋하다. 이젠 이기는거에 목숨 걸지 않는다. 져도 그만이다. 다음에 이기면 되니까. 나는 어제의 시위에서 그런 여유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타코가 어릴 적, 양희은의 아침 이슬을 부른 적이 있다. 딸이 부르는 아침 이슬은 우리가 부르는 아침 이슬과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가 부르는 비장함은 다 어디로 가고 딸은 어찌나 경쾌하고 발랄하게 부르던지. 딸이 맨 처음 아침 이슬을 부를 때 털보와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어, 저 곡을 저렇게도 발랄하게 부를 수 있는 곡이었나 하는 눈빛으로. 우리 딸과 같은 또래의 소녀들이 처음 시작한 촛불시위, 발랄하고 재밌고 쿨했다. 나는 이 촛불 시위에 나온 어린 딸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유난히 부러웠던 프랑스의 광장문화를 우리도 가질 수 있게 되어 눈물나게 고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나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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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발언대. 재수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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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동안 털보가 들고 있는 나의 촛불과 털보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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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도 문제지만 운하는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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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시청앞으로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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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비옷을 입으면 되고, 길을 막으면 돌아가면 된다. 우리는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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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촛불. 비록 작은 촛불이지만 세상을 밝히기에 충분한 빛이다.



어제는 다행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2시간 정도의 집회를 가진 후 종로와 명동을 한바퀴 돌아 시청에서 마감했다. 부디, 부디, 사람만은 다치지 않는 시위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새벽에도 분신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부디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목숨만은 걸지 마시길... 그리고 하루 빨리 회복되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놓고 싸우는 시대는 과거의 시대로 끝냈다고, 우리 시대에서 종지부를 찍었다고, 우리의 딸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길 이명박 정부에게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