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DSLR이 생겼을 때, 도대체 요렇게 생긴 물건이 어떻게 사진이 되어 나오는지 궁금하였다. 자동카메라처럼 매끈하고 슬림하게 생겼으면 금방 손에 익어 정이라도 들겠건만, 생긴 건 투박하고 또 겉모양은 시커먼 물건이 아무렇게나 누른다고 다 사진이 되어 나오는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사람들은 사진 잘 찍는 털보랑 같이 사는데 물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라며 나의 고민에 대해 무척이나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옆에 계신 분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늘 한결같이, 매뉴얼 열심히 읽어서 습득해라~가 대답의 전부였다. 나의 답답한 마음은 매뉴얼의 깨알같은 글씨보다 더 답답했다. 알다시피 매뉴얼을 읽는다는 것도 사진에 대한 기초 용어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는 점이다. 매뉴얼과 기계를 만지작거리다 강동도서관에 며칠을 들락거리면서 사진에 관한 책들, 주로 용어설명과 기술서에 관한 몇가지 책을 읽고서야 조금씩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은 나에게 있어 사물에게 말걸기였다. 기술적인 이해가 전무한 상태로 사진을 찍을 때도 사진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때는 사물이 스스로 말을 걸기도 했고, 어느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뷰파인더를 들이미는 순간 사각형 틀 안으로 튀어들어오는 사물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말걸기 놀이를 즐거워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이 나에게 있어 사진이었다.
사진은 나에게 있어 사물에게 말걸기였다. 기술적인 이해가 전무한 상태로 사진을 찍을 때도 사진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때는 사물이 스스로 말을 걸기도 했고, 어느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뷰파인더를 들이미는 순간 사각형 틀 안으로 튀어들어오는 사물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말걸기 놀이를 즐거워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이 나에게 있어 사진이었다.
사진은 세상을 보는 마음과 인식의 창이다. 그 창을 통해서 내가 세상에 끌려가고 세상이 내게로 끌려오기도 한다. 사진에는 이렇듯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소통의 매듭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나쁜 사진이란게 없고 하잘것없는 사진이라 해도 찍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소중할 따름이다.
사진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진다. 찍는 방법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은 세상 전체를 보여 주지 않는다. 부분을 보여 주고 또 전체의 시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시간만을 드러낸다. 그 점에서 사진은 세상과 시간의 파편이다.
사진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진다. 찍는 방법이 아니라 표현하는 방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은 세상 전체를 보여 주지 않는다. 부분을 보여 주고 또 전체의 시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시간만을 드러낸다. 그 점에서 사진은 세상과 시간의 파편이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쉽다고 말한다. 보는 대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찍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찍기는 쉽지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보는 대로 누를 수는 있지만 보이는 것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는 어렵다. ---- 한 장의 사진미학 중에서, 진동선
이제 나에게 말을 걸던 수많은 의미들을 좀더 따뜻하게 보듬어보려 한다. 사진에 대한 이해를 좀더 넓히려 한다. 곽윤섭 기자의 사진에 대한 이해가 맘에 들어 강의를 들으려 했지만 그의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여 우선 책을 샀다. 몇가지 기술서를 사면서 사진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한장의 사진미학, 밝은 방, 사진이란 무엇인가 등의 책도 같이 샀다. 우선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은 털보가 먼저 읽고 있는데 역시 대가답게 사진에 대한 훌륭한 책이라고 했고, 한장의 사진미학은 아래의 사진처럼 내가 밑줄치고 읽고 있는 책이다. 책에 밑줄긋지 말라는 털보의 오래된 엄명에도 불구하고 죽죽 긋고 있다. 다만 나의 소심함으로 가늘고 흐린 샤프심으로 말이다.^^
진동선의 책에서 가져온 한 줄의 글이 마냥 신비롭다. 그의 말대로 이제 신비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한다. 오래 전에 느꼈던 설레임, 그 설레임으로 시작을 하려 한다.
사진을 마주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이해의 지평을 여는 것이다. 사진은 나의 눈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눈이 될 수 있다. 정말 신비롭다.
덧붙이는 말, 지금부터 배우는 것들은 나의 밥벌이의 대상으로 쓰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를 넘어 다른 사람을 향하는 데에 쓰일 것이다. 밥벌이의 대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흥분되고 감사한 일인가. 이것이 올해 나의 감사제목들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