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미지로 보는 세상

비오는 어라연에서 만난 몇가지 풍경

어라연을 걸을 때부터 비가 시작되고 있었고, 그치다 거세지고 또 그치다 거세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라연을 걷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뜨문뜨문, 거의 사람도 없다고 해도 될 정도.
오직 길과 비가 함께 하는 길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라연이라는 지명이 주는 아련함 때문일까. 그날의 걷기가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 혼자라면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산속 깊숙이 들어가기를 시도조차 안했을텐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털보가 있어서 가능한 건 아니었을까.
그는 내 프레임에 들어와 가끔 어라연과 함께 하는 풍경이 되었다.

길.
흙과 돌과 풀, 그리고 비도 함께 했던 어라연 강변 길.

홀로 놓인 작은 배. 그 주변으로 빗소리가 따닥따닥, 또 따닥따닥... 흐른다.

지난 겨울 섬진강변을 생각나게 하던 곳.
고운 모래는 없었지만 자잘하거나 투박한 돌들이 강물과 함께 하고 있었다.

더욱 거세진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선 나무숲.
거센 비 때문에 피한 나무 숲인데 이런 아늑함을 간직하고 있다니...
가끔 피해가거나 쉬어가거나 돌아가야 할 때 그건 뒤로 물러서는 행위가 아니다.
그곳에 이런 멋진 풍경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앞으로 가기만 했다면 이런 멋진 풍경은 만나지 못했으리라.

가만히 앉아 빗소리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었던 아주 고요했던 곳이다.
가만히 빗소리를 듣다가  
우리는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많이 아쉬워했기 때문일까.
이렇게 큰 달팽이를 본 적이 없었는데 되돌아 나오는 나의 발걸음 앞에 달팽이가 마중나와 있었다.
큰 집을 이고 조용조용, 슬금슬금 기어가는 달팽이.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100원짜리 동전을 함께 놓고 한 컷.

집을 잃은 달팽이. 집이 없으니 더욱 슬퍼보였던 달팽이. 
그러나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보다는 더욱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집이란 참 요상한 것, 없으면 슬프고 있으면 짐이다.
집을 버렸으니 더욱 자유로워지기를...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자동차 키를 놓고 또 한 컷.




천천히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생각보다 달팽이가 빠르게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피커를 크게 하면 그날 함께 했던 빗소리가 들린다.
혹시 아는가. 패닉의 달팽이처럼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세상 끝 바다로 갈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