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속이야기

엄마를 닮은 집

영화 워낭소리를 봤다.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40년 넘게 일한 소와, 또한 그 소와 한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의 삶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엄마와 너무 닮았다.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만 하신 분이다. 7남매를 남편없이 홀몸으로 키워내야 했던 삶은, 네 발로 엉금엉금 기며 밭고랑을 이는 할아버지의 삶과 닮은 꼴이다. 머리가 아파도, 발가락 마디가 잘려 나가도 드러누워 쉬지도 않는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와 오버랩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집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우리집이 가장 높았다. 그 이후로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리집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마치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홀로 남은 엄마의 집은 엄마의 몸과 닮았다. 홀로 사는 어른들이 많아서 문도 잠그고 살지 않는다. 그저 집에 들러 엄마가 없으면 "엄마~"하고 부르면 어디서든지 엄마가 나타나신다. 언제나 어느 집에든 나의 엄마가 계시고, 우리들의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엄마가 자주 놀러가는 옆동의 화단. 어느 분의 솜씨인지 이곳의 화분은 화분 안에서만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화분 밖에서도 꽃이 핀다.


아파트(사실 지금은 아파트도 아닌 연립주택처럼 작지만 처음에 생길 때는 현대아파트였다^^) 짜투리 공간에 엄마가 소일거리로 가꾸고 있는 열무와 고추들이 심어져 있다.


집 바로 뒤에 산이 있다. 약수터도 있고 체육공원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린다. 벌써 아카시아가 피었다.


우리는 산으로 오르고 담쟁이는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바위틈에서 피고 있는 노란 꽃.


워낭소리의 할아버지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듯, 이곳의 할머니들은 작은 땅도 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가꾸신다. 우리의 할머니들의 손만 스치면 뭐든 푸릇푸릇 피어난다.


열무 사이로 피어난 제비꽃.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붓꽃. 내 눈에는 할머니들이 가꾼 붓꽃이 고흐의 붓꽃보다 더 화려하다.


선물상자 리본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찍었다. 이웃집 할머니께 이름을 여쭤보니 모르신단다.^^


내가 살던 돈암동 현대아파트. 엄마의 몸을 닮아 다 닳아버린 아파트. 재개발로 다시금 태어나기 위해 기다리는 아파트. 그 낡은 아파트 넘어 그리고 고층 아파트를 넘어로 저녁해가 저물고 있다. 나 어릴적 일나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고개가 빠져라 바라본 석양이다. 그때는 우리집에서 정릉 쪽 산자락 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도 석양은 아파트 모퉁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어릴적 내가 본 석양처럼 정릉 산자락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이제는 일끝내고 허겁지겁 달려와 자식들 밥해주러 오던 엄마는 안계신다. 우리 엄마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