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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이야기

털보부인, 자유다!




이번 달에는 이상하게도 월말의 일들을 일찍 끝냈다. 일찍 끝냈을 뿐만 아니라 손쉽게 끝냈다. 정기적인 일이라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쉽게 끝내고도 힘이 남아돌았다. 더구나 월말에는 좀처럼 약속을 잡지 않는 내가 연극을 보여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슬쩍 연극을 보고 올까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일의 진척이 빨라서 하루 저녁 슬며시 연극을 보고 와도 시간 안배가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예측한 시간 안배가 틀릴 수 있을 것 같아 연극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그 날도 일을 했다. 

더구나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평소처럼 새벽까지 일을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일의 진척이 빨라서 쉽게 마무리를 하고는 지난 주에 있는 에니어그램 특강까지 들었다. 다른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토요일까지의 일진척도로 보아 주일 하루는 쉬어도 일에 차질이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평소라면 교회에 다녀와서 조금 쉬고는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이번 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특강까지 듣고 밤9시가 넘어서 들어왔는데도 몸은 오히려 가벼워지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일의 마무리를 위해 30, 31일을 보낸 후의 결론은 내가 이렇게 시간이 남는 이유는 순전히 타코를 위한 가사노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평소에 타코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면 이번 달에 처음으로, 아니 딱 11년만에 처음으로, 일만을 위해 에너지를 써서 월말의 일을 마감했던 것이다. 

집안일과 나의 일을 병행하기 시작한 건, 정확하게 울 딸 3학년 때부터다. 그러니까 99년에 충무로 사무실을 접고 집근처로 사무실을 옮긴 것이니 올해로 11년째인 셈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가사일과 나의 일의 구분은 출퇴근이라는 시간으로 정확히 나뉠 수 있었다. 출근을 하면 집안 일은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었으며 퇴근과 동시에 집안 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나의 일과 집안일이 어느 정도는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다 99년도부터 집가까이 사무실을 얻으면서 학교에 다녀온 타코가 사무실로 와서 하루 종일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이 집으로 나의 일터를 옮기면서부터는 집안일과 나의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직업여성이면서 동시에 주부였던 것이다.

나에게 집안일이라 함은 가사노동, 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 육아노동에 해당하고, 육아노동은 타코를 걷어먹이고 입히는 일에 해당한다. 나에게 두 일은 모두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엄마와 직업여성으로서의 변신이 수시로 요구되었던 것. 

그런데 그 변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 딱 11년만에 주어진 것이다. 일의 집중도는 높아졌고 당연히 일의 진행이 빨라진 것이다. 이건 바로 타코가 내 곁에 없기 때문에 주어진 자유다. 타코는 타코대로 일본에서 부모로부터 독립선언, 자유만세! 라며 쾌재를 부르고 있으며 나는 나대로 가사노동에서 벗어난 자유를 맛본 셈이니 이 얼마나 좋은가. 물론 지금도 밥상에 앉으면 일본에서 잘 먹고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어쩌랴, 나도 이 자유가 너무 좋은 것을...

타코, 지금 일본에서는 너의 입학식이 열리고 있겠구나. 비록 엄마빠가 너의 입학식을 지켜보지는 못하지만 너는 일본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거라. 그리고 너의 꿈을 펼치거라. 대신 나는 너의 꿈을 지켜보면서 여기서 자유만세를 부를테니 우리 두 여자 오랜만에 자유만세를 외쳐보자꾸나~  오호 좋구나. 이 자유~ 이 꿀맛같은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