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타코(딸의 애칭)가 방긋 웃고, 방바닥을 기는 것, 걷는 것, 먹는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저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비록 하나하나 기록해놓지는 않았지만 또렷히 떠오르는게 있습니다. 언제 웃었는지, 언제 기었는지, 그리고 옹알이를 시작해서 한마디 단어에서 두마디 단어로 언제 넘어갔는지를요.
기억이란게 실타래처럼 엮이는 것인지 하나를 생각하면 어떤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타코는 방긋 웃으면서 기었고, 기면서 걸었으며, 걸으면서 동시에 뛰었던 기억입니다. 분명 하나 하나 그 단계가 있었을 것인데 실타래처럼 엮인 기억에 의지하면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짧은 순간에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짧은 순간처럼 느껴지는 기억들도 다시금 과거로 그 기억을 꼼꼼히 거슬러 올라가보면 하나 하나의 이음새가 분명 길었을 것입니다. 걸으면서 뛰기까지 수없이 넘어졌으며 기면서 수없이 여기저기 부딪혔겠지요. 그런데도 그 이음새에 대한 기억보다는 순식간에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그건 어린 타코가 로보트의 '합체신공'과도 같이 뿅~하는 순간 훌쩍 커버린 타코로 변신하여 지금 제 곁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만난 현우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순식간에 다 익힌 것처럼 기억되는 우리 딸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리게 익히는 아이였는데 현우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아이였습니다. 글을 익히는 것도 느렸으며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단계까지 가기도 아주 길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것도, 자전거를 익히는 것도 아주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우는 모든 걸 배워서 몸에 익힐 때까지 우리 딸보다 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한 아이인 것이지요.
그런데 현우에게는 그 긴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긴 시간을 기다려준다면 현우처럼 느린 아이들도 이 모든걸 익힐 수 있습니다. 그건 요즘의 현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답니다. 현우가 갑자기 어느 단계를 훌쩍 넘은 아이처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버스타고 혼자서 교회다니기를 익혔으며 지난 5월에는 한자 9급시험에 합격했으며 8월에는 한자검정시험 7급에 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또 지난 9월 2일에는 발달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2007 하트 마라톤대회에서 4등을 했구요. 비록 5km를 뛰는 단거리 마라톤이지만 현우는 당당히 4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7급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마라톤 대회에서 4등을 했을 때도 현우 어머님은 그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셨습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을까요. 저는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보다 더 방방 뜨게 좋아해드렸습니다. 그 나눔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현우는 분명 느리게 익히는 아이입니다. 우리가 그 느린 보폭을 인정한다면 현우와 만날 때 현우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 가능성을 기다려준 건 물론 현우 어머님입니다. 현우 어머님도 처음엔 느린 아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 느림을 인정하는 순간 빠르게 걸었던 보폭을 버렸으며 그때부터 현우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현우 어머님이 나란히, 느리게 걷기 시작하면서 현우를 기다려주자, 현우가 이제는 조금은 빠른 보폭으로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보트의 합체신공처럼 빠른 변신은 아닐지라도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현우를 만나면 현우와 마음의 보폭을 같이 하여 걸어주세요.
단, 실제로 현우는 걸음이 무척 빠른 아이입니다. 현우와 같이 걸으려면 운동화를 신고 빠르게 걸어야 같이 걸을 수 있답니다.^^
------------------ 이 글은 사랑부 주보(9월 9일자)에 실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