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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보는 세상

청산도 해뜨는 마을 진산리에서

완도에서 컴컴한 새벽을 헤치고 어슴프레 밝아오는 청산도에 닿는 순간 이러쿵 저러쿵 말이 필요없어졌다. 그저 이 섬에서 바람처럼 휘적휘적 떠돌다 지치면 어느 곳엔들 이 한몸 쉬지 못할 곳이 어디랴 싶어졌다.  이번 여행은 무조건 멀리, 무조건 길게, 무조건 한 번도 간 적없는 곳으로 떠나자는 것이었는데 그에 가장 적절한 곳이 청산도가 아니었나 싶다. 하여 여행의 기록은 털보가 꼼꼼하고 친절하게 기록할 것이라 믿고 나는 두서없이 시간의 순서에도 맞지 않게 쓰고자 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청산도에 발을 딛는 순간 이런 풍경을 맞이하였으니 아무런 말이 필요가 없었다. 해뜨는 마을을 찾아가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달리던 차를 세우고 한 컷.


들리지 않는가. 잔잔한 파도소리가... 잔잔한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조용한 울림이... 
지리산 둘레길의 다랭이논은 삶의 질곡이 고스란히 느껴져 판소리 한판 걸지게 불러야 제맛일 듯한데 이곳 청산도의 다랭이 논은 봄의 왈츠처럼 잔잔히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듯 했다. 이 선율에 몸을 맡기면 나도 떠밀려갔다 떠밀려올듯 했다.


다행이 논과 논 사이에 조상의 묘도 함께 한다. 청산도는 삶과 죽음이 이승과 저승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뜨는 마을 진산리에 도착하자 해는 이미 붉은 빛이 지천이다. 짙은 안개 덕분에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니 더욱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없다. 


해가 구름 사이로 숨어버리니 이제 짙은 운무만이 그득하다. 


음력 설이라 뱃일을 나가지 않아 배들이 모두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진산리 마을 풍경. 마을 돌담을 따라 올라가니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마을을 돌아나오다 걸려있는 빨래와 칠벗겨진 대문 그리고 플라스틱 바구니까지,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이곳 해뜨는 마을에 서울에서부터 들고 내려간 짐들을 풀려고 했다. 허나 때가 때인지라 설쇠러 육지로 나갔거나 도회지에서 내려온 자식들 덕에 민박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린 이곳에다 짐을 풀지 못했다.


설쇠러 내려온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챙겨보내는 것이 부모의 마음. 부모님의 마음이 한가득이다. 


닭장 그물이 높아 그물 위로 카메라를 넣고 무조건 셧터를 눌러댔다. 그나마 한 컷 건진 청산리 닭. 그물이 높은 건 닭들이 날라다녀서 그런가 싶어 괜히 웃음이 났다. 


마을에는 강아지도 많고 고양이도 많았다. 요녀석들은 도망가지도 않고 귀여운 자세를 많이 취해준 덕분에 한 컷 건질 수 있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해가 다시 나온 모양이다. 청산리에 머물고 있는 이틀내내 그리고 청산리를 떠나는 3일째까지 바다는 오늘처럼 잔잔했으며 안개는 그득했고 날은 봄날처럼 따뜻했다.